국방부가 2010년 6월29일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연 ‘천안함 언론인 설명회’에 참가한 기자와 피디들이 천안함 절단면을 살펴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⑥ 조일병 총기난사 월북사건과 천안함(하)
⑥ 조일병 총기난사 월북사건과 천안함(하)
합조단 민간위원이던 신상철이 천안함 조사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었다. 그 뒤 1년 6개월이 지났건만 재판은 지지부진하다. 국방부는 안보를 이유로 주요자료들을 내지 않고 있다. 나와 동료 변호사들은 사고정황을 잘 알고 있거나, 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을 접촉했지만 대개가 나서기를 꺼린다. 심지어 과거 자신이 한 말이나 견해를 바꾸기도 한다. 애초 조사대상인 국방부가 조사주체로 참여한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검찰이 이번 명예훼손사건 수사과정에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던 정도 의지를 가지고 침몰원인이 무엇인지와 군이 제대로 대응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했더라면 어느 정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섰을 텐데 그저 국방부를 대변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3월26일, 북 잠수함이 밤 9시22분 천안함에 어뢰를 쏘고 도주했다면 잠수함을 찾으라는 명령이 떨어진 밤 10시5분 현재, 사고지점으로부터 반경 10킬로미터 안팎에서 발견되었어야 했다. 조류에다 소음을 줄여야 하는 걸 감안하면 15킬로 이상 속도 내기가 어렵기에 그렇다. 가까운 기지 남포항까지 거리가 85킬로미터여서 거의 6시간 동안은 백령도와 남포항 사이 바닷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수함 못 찾았나, 아니면 아예 없었나
해군은 사고 직후 초계함인 속초함과 왕건함, 청주함, 그밖에 여러 경비함들을 백령도와 북방한계선 인근에 배치했다. 소나가 장착된 링스 헬기와 해상초계기도 출격시켰다. 수색은 다음날 아침 8시까지 10시간 동안 계속되었지만 아무것도 안 나왔다. 해군 작전책임자는 “그 당시 해저 반향음과 주변에서 어선들이 조업하면서 내는 소음 등 복합적인 이유로 탐지를 못할 수도 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소나는 어선과 잠수함이 내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또 당시 출격한 해상초계기는 반경 십수킬로 이내 소리를 탐지하는 소나를 48개나 바다 여기저기 투하시켜 잠수함 음향을 전송받을 수 있었다. 다른 최첨단 장비들도 갖추었다. 370킬로 떨어진 목표물을 알아보는 레이더, 잠수함 열을 감지하는 적외선 탐지기, 위협 전자파를 알려주는 전자전 장비, 잠수함 자기장의 변화를 탐지하는 자기 탐지기. “현재 한국이나 미국의 장비들이 그 당시와 같은 해상 조건하에서는 (잠수함을) 체크를 할 수 없는 정도의 기능이었다는 것인가요?” “투입되었던 대잠장비의 능력은 우수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 대잠탐색을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접촉을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잠수함이 남포항까지 아무리 빨리 가도 6시간 이상 걸리는데 10시간 동안 바다를 최첨단 장비로 눈에 불을 켜고 찾았는데도 못 찾았다니 그 잠수함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렇다면 향후에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했을 때 또다시 피격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현재 대잠작전의 여러 가지 작전수행방법과 피격을 당하지 않기 위한 전술적인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때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건가. 그럼 그때 죽은 46명의 목숨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나. 구글 맵. 3만 6천 킬로미터 상공에 떠 있는 인공위성으로 수 미터 크기 도로며 건물을 실제 영상으로 본다. 그런데 큰 군함을 동강내고 시속 15킬로 이하로 도망가는 잠수함을, 잠수함 잡는 초계함들과 비행기가 10시간 동안 소리, 온도, 전자파, 자기장을 이용해 찾아다녔는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수준에 비추어, 있는 잠수함을 못 찾았다고 하기보다는 애시당초 그런 잠수함은 없었다고 말하는 게 더 상식에 맞지 않을까. 최초 사고가 난 시각도 재판의 쟁점이다. 21시22분에 지진파가 포착되었으므로 이때 배가 선수와 가스 터빈실, 선미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군에서 만든 걸로 보이는 ‘최초관련 상황일지’에는 2함대 사령부가 21시55분에 해군 작전사령부에 보고하기를, 천안함에 21시15분경 ‘최초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천안함이 세 조각으로 분리되기 7분 전인 21시15분 발생한 최초상황이란 또 어떤 상황이었을까.
‘조사대상 국방부’가 조사주체로
참여한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노 전 대통령 수사하던 의지로
검찰이 강제수사를 하였다면
누구나 납득했을 것이다 해군은 사고시간도 수차례 번복
폭발의 결정적 증거였던
선체-어뢰의 흡착물질에도
의문이 제기됐지만 외면했다
기본증거가 무너져버렸는데도… 알루미늄 황산염 수화물과 폭발의 인과관계는?
국방부는 당일인 26일 밤에는 사고가 21시45분에 일어났다고 발표했다가 27일에는 21시30분, 29일에는 21시20분, 4월1일에는 21시22분으로 여러 차례 번복했다. 하다못해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도 시계를 들여다보고 사고시각을 특정할 수 있다. 그런데 100명의 장병들이 타고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 같은 전자장비들이 실시간으로 배의 위치를 여러 상급부대에 보내 주고 있는 터에 언제 배가 갈라졌는지를 두고 며칠 동안 번복에 번복을 거듭한다는 것 역시 내 상식으론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해군작전사령부가 보고한 천안함 사고시각인 21:15를 합참과 국방부에서 각각 ‘1’자에 ‘ㄴ‘자를 그려 넣어 21:45로 조작하였다는데 증인도 이 내용을 알고 있나요?” “증인도 보도내용을 보고 인지했고 그 사유는 모르고 있습니다.” 해군 작전사령부 책임자는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상 배가 사라지면 즉시 통신으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증언했다. “그럼 천안함이 소실되면 그 시각에 알 것 아닙니까.” “예, 알지요.” 그런 그가 또 이런 증언을 했다. “그 당시에 21:15경으로 보고한 이유는 최초 보고를 21:31경 2함대로부터 해군작전사령부가 접수했고, 그 이후에 계속 상황을 파악하던 중에 현장에 있는 천안함 동영상을 보면서 천안함의 상태를 보고 21:30 이전에 발생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하에 21:15경으로 보고한 것입니다.” 천안함 ‘동영상’을 보고 ‘추정’을 했다? 그리고 ‘21:15’는 해작사 책임자가 추정한 게 아니라 2함대가 보고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2함대나 해작사는 실시간으로 천안함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데 배가 사라졌다. 그러면 실시간 핫라인 통화를 해서 천안함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최초관련 상황일지’ 내용과 일치하게, 해경도 사고발생시각이 9시15분으로 명기된 상황보고서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 9시15분이라는 사고 발생 시각은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과 통화를 통해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확인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왜 쉽게 확인이 가능한 이 방식을 놓아두고 어느 단계에서, 누가, 무슨 목적으로 9시15분으로 허위보고를 했다는 것인지 국방부가 밝혀야 한다. 기록을 들여다볼수록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폭발의 중요한 증거로 내세운 건 선체와 어뢰추진체에서 떼어낸 백색물질이었다. 애초 합조단은 이것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라 했다. 쉽게 말하면 어뢰를 구성하는 알루미늄이 폭발해서 고온의 고체 상태에서 선체에 가서 들러붙은 후(물리적 결합), 시간이 지나면서 알루미늄에 녹이 슨 현상이라는 거다. 그런데 안동대 정기영 교수가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니라 알루미늄 황산염 수화물이란다. 낮은 온도에서 일정한 비율에 맞춰 알루미늄과 황산이 ‘화학적으로’ 결합된 화합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황은 바닷물에 자연상태로 녹아 있는 데서 유래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조직을 전자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백색물질들이 어디선가 날아와 고체 상태로 들러붙은 게 아니고, 녹아 있는 상태에서 존재하다가 가라앉으면서 차례차례 성장했다는 거였다. 폭발 때문이라면 그 직후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고온의 알루미늄 미세한 쪼가리들이 날아와 단번에 고체 상태로 들러붙을 것이고, 시간이 좀 지나면 알루미늄 고체가 바닷물에 식기 때문에 선체에 들러붙을 수가 없다. 따라서 정 교수의 분석 결과처럼 ‘녹아 있는 상태에서 차례차례 화합물의 형태로 “성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합조단장은 나중에 말을 조금 바꾸었다. 정 교수의 분석을 믿을 만하다면서도 이랬다. “알루미늄 황산염 수화물이 대체로 폭발이 아닌 섭씨 100도 이하의 자연상태에서 침전으로 생성되는 물질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역으로 이 물질이 폭발로 생성되지는 않는다는 연구결과는 없었기 때문에 (정 교수의 분석이) 폭발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 천안함이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로 내세운 것이 어뢰추진체와 선체에서 똑같은 백색물질이 나왔고 이것을 분석해 보니 폭발 때 생기는 알루미늄 산화물이었다는 거 아니었던가. 이게 무너진 이상, 폭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알루미늄 황산염 수화물이 자연상태의 저온에서뿐만 아니라 폭발로도 생성된다는 걸 증명해야 앞뒤가 맞는다. 어뢰추진체 맨 뒤에 ‘1번’이라 씌어 있는 유성매직 글씨도 엄밀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 정황은 단지 ‘번’이라는 한글을 쓰는 남이나 북 어느 한쪽이 그 어뢰추진체에 그렇게 적어 넣은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그런 건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고 있지 않다. 합조단은 우선, 이 물건이 2010년 3월26일 천안함을 공격한 물건인지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 북한 것이라 해도 그전부터 바다 밑에 있었던 것일 수도 있으니 그렇다. 둘째로 글씨 부분 바깥에 칠했던 페인트는 녹았는데 그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녹는 ‘1번’ 글씨는 왜 안 녹았는지. 카이스트 송태호 교수는 어뢰 탄두가 터져도 1초 이내의 워낙 순식간의 일이기에 열이 강철로 된 몸체를 따라 7미터 뒤까지 전달될 새가 없어서 ‘1번’ 글씨 부분은 단 0.1도도 올라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미국 버지니아대 이승헌 교수는 폭발은 비가역적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7미터 뒤에도 3천도의 ‘기체’가 덮친다 한다. 스크루는 왜 반대로 휘어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버스가 갑자기 서면 그 안에 탄 사람들은 가던 방향, 즉 앞쪽으로 몸이 쏠린다. 천안함 스크루는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합조단 발표대로 폭발로 갑자기 축이 멈춰 관성의 법칙에 따라 스크루가 휜다면 (이걸로 스크루가 휠 수 있을까) 어느 방향일까. 시계방향. 그런데 실제는 그 반대로 휘어 있고 합조단은 시뮬레이션에서 스크루를 실제 상황과는 달리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리고 실험을 했다. 과학과 이성을 통해 이런 의문과 주장들의 진위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질 거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정권의 이해에 무관한 멋진 검사들을 통해서? 그것도 안 되면 특별검사의 강제수사를 통해서라도…. 그래야 내 둘째아들 녀석과 같은 때 군에 갔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저 젊은 수병들에게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될 게다. 진실은 종종 우리의 믿음이나 희망에 어긋나는 세상의 실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죽은 뒤에도, 저세상이 있어 영원히 살고 싶다. 하지만 누구든, 어느 편이든, 어떠한 경우든 세상의 실상 앞에 마음 비우고 마주 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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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은 사고 직후 초계함인 속초함과 왕건함, 청주함, 그밖에 여러 경비함들을 백령도와 북방한계선 인근에 배치했다. 소나가 장착된 링스 헬기와 해상초계기도 출격시켰다. 수색은 다음날 아침 8시까지 10시간 동안 계속되었지만 아무것도 안 나왔다. 해군 작전책임자는 “그 당시 해저 반향음과 주변에서 어선들이 조업하면서 내는 소음 등 복합적인 이유로 탐지를 못할 수도 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소나는 어선과 잠수함이 내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또 당시 출격한 해상초계기는 반경 십수킬로 이내 소리를 탐지하는 소나를 48개나 바다 여기저기 투하시켜 잠수함 음향을 전송받을 수 있었다. 다른 최첨단 장비들도 갖추었다. 370킬로 떨어진 목표물을 알아보는 레이더, 잠수함 열을 감지하는 적외선 탐지기, 위협 전자파를 알려주는 전자전 장비, 잠수함 자기장의 변화를 탐지하는 자기 탐지기. “현재 한국이나 미국의 장비들이 그 당시와 같은 해상 조건하에서는 (잠수함을) 체크를 할 수 없는 정도의 기능이었다는 것인가요?” “투입되었던 대잠장비의 능력은 우수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 대잠탐색을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접촉을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잠수함이 남포항까지 아무리 빨리 가도 6시간 이상 걸리는데 10시간 동안 바다를 최첨단 장비로 눈에 불을 켜고 찾았는데도 못 찾았다니 그 잠수함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렇다면 향후에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했을 때 또다시 피격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현재 대잠작전의 여러 가지 작전수행방법과 피격을 당하지 않기 위한 전술적인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때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건가. 그럼 그때 죽은 46명의 목숨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나. 구글 맵. 3만 6천 킬로미터 상공에 떠 있는 인공위성으로 수 미터 크기 도로며 건물을 실제 영상으로 본다. 그런데 큰 군함을 동강내고 시속 15킬로 이하로 도망가는 잠수함을, 잠수함 잡는 초계함들과 비행기가 10시간 동안 소리, 온도, 전자파, 자기장을 이용해 찾아다녔는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수준에 비추어, 있는 잠수함을 못 찾았다고 하기보다는 애시당초 그런 잠수함은 없었다고 말하는 게 더 상식에 맞지 않을까. 최초 사고가 난 시각도 재판의 쟁점이다. 21시22분에 지진파가 포착되었으므로 이때 배가 선수와 가스 터빈실, 선미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군에서 만든 걸로 보이는 ‘최초관련 상황일지’에는 2함대 사령부가 21시55분에 해군 작전사령부에 보고하기를, 천안함에 21시15분경 ‘최초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천안함이 세 조각으로 분리되기 7분 전인 21시15분 발생한 최초상황이란 또 어떤 상황이었을까.
천안함 사고 직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조사본부 1층 현관에 전시된 어뢰추진체. ‘1번’이라는 글씨는 아무것도 말해주고 있지 않다.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참여한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노 전 대통령 수사하던 의지로
검찰이 강제수사를 하였다면
누구나 납득했을 것이다 해군은 사고시간도 수차례 번복
폭발의 결정적 증거였던
선체-어뢰의 흡착물질에도
의문이 제기됐지만 외면했다
기본증거가 무너져버렸는데도… 알루미늄 황산염 수화물과 폭발의 인과관계는?
국방부는 당일인 26일 밤에는 사고가 21시45분에 일어났다고 발표했다가 27일에는 21시30분, 29일에는 21시20분, 4월1일에는 21시22분으로 여러 차례 번복했다. 하다못해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도 시계를 들여다보고 사고시각을 특정할 수 있다. 그런데 100명의 장병들이 타고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 같은 전자장비들이 실시간으로 배의 위치를 여러 상급부대에 보내 주고 있는 터에 언제 배가 갈라졌는지를 두고 며칠 동안 번복에 번복을 거듭한다는 것 역시 내 상식으론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해군작전사령부가 보고한 천안함 사고시각인 21:15를 합참과 국방부에서 각각 ‘1’자에 ‘ㄴ‘자를 그려 넣어 21:45로 조작하였다는데 증인도 이 내용을 알고 있나요?” “증인도 보도내용을 보고 인지했고 그 사유는 모르고 있습니다.” 해군 작전사령부 책임자는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상 배가 사라지면 즉시 통신으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증언했다. “그럼 천안함이 소실되면 그 시각에 알 것 아닙니까.” “예, 알지요.” 그런 그가 또 이런 증언을 했다. “그 당시에 21:15경으로 보고한 이유는 최초 보고를 21:31경 2함대로부터 해군작전사령부가 접수했고, 그 이후에 계속 상황을 파악하던 중에 현장에 있는 천안함 동영상을 보면서 천안함의 상태를 보고 21:30 이전에 발생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하에 21:15경으로 보고한 것입니다.” 천안함 ‘동영상’을 보고 ‘추정’을 했다? 그리고 ‘21:15’는 해작사 책임자가 추정한 게 아니라 2함대가 보고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2함대나 해작사는 실시간으로 천안함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데 배가 사라졌다. 그러면 실시간 핫라인 통화를 해서 천안함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최초관련 상황일지’ 내용과 일치하게, 해경도 사고발생시각이 9시15분으로 명기된 상황보고서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 9시15분이라는 사고 발생 시각은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과 통화를 통해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확인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왜 쉽게 확인이 가능한 이 방식을 놓아두고 어느 단계에서, 누가, 무슨 목적으로 9시15분으로 허위보고를 했다는 것인지 국방부가 밝혀야 한다. 기록을 들여다볼수록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폭발의 중요한 증거로 내세운 건 선체와 어뢰추진체에서 떼어낸 백색물질이었다. 애초 합조단은 이것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라 했다. 쉽게 말하면 어뢰를 구성하는 알루미늄이 폭발해서 고온의 고체 상태에서 선체에 가서 들러붙은 후(물리적 결합), 시간이 지나면서 알루미늄에 녹이 슨 현상이라는 거다. 그런데 안동대 정기영 교수가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니라 알루미늄 황산염 수화물이란다. 낮은 온도에서 일정한 비율에 맞춰 알루미늄과 황산이 ‘화학적으로’ 결합된 화합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황은 바닷물에 자연상태로 녹아 있는 데서 유래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조직을 전자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백색물질들이 어디선가 날아와 고체 상태로 들러붙은 게 아니고, 녹아 있는 상태에서 존재하다가 가라앉으면서 차례차례 성장했다는 거였다. 폭발 때문이라면 그 직후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고온의 알루미늄 미세한 쪼가리들이 날아와 단번에 고체 상태로 들러붙을 것이고, 시간이 좀 지나면 알루미늄 고체가 바닷물에 식기 때문에 선체에 들러붙을 수가 없다. 따라서 정 교수의 분석 결과처럼 ‘녹아 있는 상태에서 차례차례 화합물의 형태로 “성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합조단장은 나중에 말을 조금 바꾸었다. 정 교수의 분석을 믿을 만하다면서도 이랬다. “알루미늄 황산염 수화물이 대체로 폭발이 아닌 섭씨 100도 이하의 자연상태에서 침전으로 생성되는 물질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역으로 이 물질이 폭발로 생성되지는 않는다는 연구결과는 없었기 때문에 (정 교수의 분석이) 폭발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 천안함이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로 내세운 것이 어뢰추진체와 선체에서 똑같은 백색물질이 나왔고 이것을 분석해 보니 폭발 때 생기는 알루미늄 산화물이었다는 거 아니었던가. 이게 무너진 이상, 폭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알루미늄 황산염 수화물이 자연상태의 저온에서뿐만 아니라 폭발로도 생성된다는 걸 증명해야 앞뒤가 맞는다. 어뢰추진체 맨 뒤에 ‘1번’이라 씌어 있는 유성매직 글씨도 엄밀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 정황은 단지 ‘번’이라는 한글을 쓰는 남이나 북 어느 한쪽이 그 어뢰추진체에 그렇게 적어 넣은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그런 건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고 있지 않다. 합조단은 우선, 이 물건이 2010년 3월26일 천안함을 공격한 물건인지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 북한 것이라 해도 그전부터 바다 밑에 있었던 것일 수도 있으니 그렇다. 둘째로 글씨 부분 바깥에 칠했던 페인트는 녹았는데 그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녹는 ‘1번’ 글씨는 왜 안 녹았는지. 카이스트 송태호 교수는 어뢰 탄두가 터져도 1초 이내의 워낙 순식간의 일이기에 열이 강철로 된 몸체를 따라 7미터 뒤까지 전달될 새가 없어서 ‘1번’ 글씨 부분은 단 0.1도도 올라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미국 버지니아대 이승헌 교수는 폭발은 비가역적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7미터 뒤에도 3천도의 ‘기체’가 덮친다 한다. 스크루는 왜 반대로 휘어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버스가 갑자기 서면 그 안에 탄 사람들은 가던 방향, 즉 앞쪽으로 몸이 쏠린다. 천안함 스크루는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합조단 발표대로 폭발로 갑자기 축이 멈춰 관성의 법칙에 따라 스크루가 휜다면 (이걸로 스크루가 휠 수 있을까) 어느 방향일까. 시계방향. 그런데 실제는 그 반대로 휘어 있고 합조단은 시뮬레이션에서 스크루를 실제 상황과는 달리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리고 실험을 했다. 과학과 이성을 통해 이런 의문과 주장들의 진위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질 거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정권의 이해에 무관한 멋진 검사들을 통해서? 그것도 안 되면 특별검사의 강제수사를 통해서라도…. 그래야 내 둘째아들 녀석과 같은 때 군에 갔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저 젊은 수병들에게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될 게다. 진실은 종종 우리의 믿음이나 희망에 어긋나는 세상의 실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죽은 뒤에도, 저세상이 있어 영원히 살고 싶다. 하지만 누구든, 어느 편이든, 어떠한 경우든 세상의 실상 앞에 마음 비우고 마주 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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