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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람도 법도 약육강식, 세상은 왜 이런 모습인가”

등록 2013-02-01 19:30수정 2013-02-02 13:51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연재를 마치며, 김형태-금태섭 대담
▶ 김형태 변호사가 지난 1년 동안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해온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은 1월26일 끝났습니다. 지난 1년간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은 비망록을 정리하며, 김형태-금태섭 변호사의 ‘비망록을 말하다’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김형태-금태섭 변호사가 함께 쓴 ‘마지막 비망록’, 두 사람은 무엇을 말했을까요.


김형태와 금태섭, 두 명의 변호사가 만났다.

금 변호사는 지난 1월22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두툼한 서류철을 꺼내 책상 왼쪽 머리에 올려놓았다. 김 변호사가 지난 1년간 <한겨레>에 연재해온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비망록)이었다. 비망록 원고 곳곳에 금 변호사가 직접 그은 형광색 밑줄이 눈에 띄었다. 금 변호사가 진행한 ‘비망록을 말하다’ 대담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겨레> 토요판과 함께 출발한 비망록 연재는 지난해 1월28일 ‘검사시보 시절의 기억’으로 시작해 지난 1월26일 ‘그때 그 사람들’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금 변호사는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과 황우석, 송두율, 광우병 피디수첩, 용산참사 사건 등 김 변호사가 맡았던 주요 사건을 찬찬히 되짚었다. 김 변호사 눈은 그때마다 아득한 회상에 젖었다. 그는 비망록의 마지막, 대담의 끝을 계절의 순환에 대한 언급으로 마쳤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삶이 다 소설이고 영화 아니겠어요. 고정불변의 독립된 ‘존재’란 없고 그저 이합집산하면서 변해가는 흐름이 있을 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봄이 오지요.”

변호인이 다툴수록 의뢰인에 불리한 현실

금태섭(금)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을 보며 저는 ‘정면대결’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형사재판이란 원래 판사가 심판을 보는 가운데, 검사와 변호사가 대결하는 구도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가 법정에서 유무죄를 치열하게 다투려 하면 ‘괘씸하게’ 보는 분위기가 있는데요, 김 변호사께서 ‘정면대결의 길’을 택한 동기가 있었습니까?

김형태(김) 판사나 검사를 찾아가 ‘좀 봐달라’며 선처를 바라는 게 체질에 안 맞습니다.(웃음) 가끔 그런 사건이 오는데 가능하면 안 하죠. 선처란 기본적으로 칼자루를 쥔 판검사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에 예측이 안 되잖아요. 반면 법리적으로 다툴 부분은 상대적으로 분명하니까 나름의 논리를 구성해서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김 변호사께서 맡았던) ‘양평 생매장 사건’이었죠. 변호사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열린 재판의 무효를 주장하며 재판장과 법원서기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을 하셨습니다. 김 변호사의 의뢰인은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요, 그날 밤 12시 불암산에 올라가 ‘나 때문에 저 여자가 죽는구나. 변호인인 내가 계속 법원을 물고 늘어진 바람에 저 여자(의뢰인)가 죽는구나’ 하고 우는 장면은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김형태 변호사
내가 봐도 ‘죽일놈’ 있지만
국가는 이성적이어야
77명 죽인 노르웨이 테러범
한국 판사가 21년형 선고했다면
이민이라도 가야 했을걸
증오에 증오로 맞서면
증오범죄는 늘 수밖에 없다

금태섭 변호사
조서 문제 지적에 검사들 왈
“우리가 하지도 않은 말 쓰겠냐”
그럼 난 이렇게 맞받아친다
“내 피의자 조서는 내가 쓰겠다
나라고 없는 말 쓰겠냐”
쓰는 사람 따라 달라지는 조서
궁극적으로 없어지는 게 맞아

판사나 검사에게 잘못 보이면 나를 믿고 찾아온 의뢰인에게 피해가 가니까, 그게 어려워요. 양평 사건 때도 판사와 싸우지만 않았어도…. 같은 일이 생기면 또 싸우겠지만.

이해합니다. 저도 2006년 <한겨레>에 쓴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 기고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변호사로서 고민되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사건도 있었어요. 말도 안 되는 살인미수 혐의를 뒤집어쓴 유명 여성 연예인이었는데, 기소된 뒤 모든 일이 다 끊겨서 말 그대로 재판에 인생을 걸어야 했거든요. 그때 검찰 쪽 증인을 상대로 집요하게 질문 공세를 폈더니 판사가 처음에는 말리다가 나중에는 퇴장하라는 겁니다. 다행히 나중에 무죄를 받기는 했는데, 만약 당시 판사 눈치를 봐서 증인을 제대로 추궁하지 못했다면 무죄 못 받을 사건이었죠. 그렇게 치열하게 맞붙어야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금 비망록에 실린 ‘파키스탄 사형수 이야기’는 사형제도에 관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형폐지론자인 김 변호사는 당시 파키스탄 사형수 두 명의 누명을 벗기려 동분서주하셨는데요, 최근 국내에서는 사형제 존치론에 찬성하는 여론이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사형제 폐지의 가장 큰 근거는 뭔가요?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고 나와 있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모든 국민’에 포함되거든요. 헌법이 이렇게 돼 있는데 나는 법조인들이 왜 헌법을 지키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저도 사형제 폐지를 지지합니다만, 실제로 사형집행 논란을 빚는 피고인은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비망록 ‘사형제 위헌심판’ 편에서 소개하신 ‘보성 어부노인 살인사건’이 대표적이었는데요,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 젊은 사람을 처참하게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노인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법감정을 갖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나도 응보 감정은 있습니다. 가끔 뉴스를 보다 보면 ‘저런 짐승 같은 놈은 바로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국가는 이성적이라야 하거든요. 국가마저 개개인처럼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헌법 제정권력자가 선언한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는 시시각각 변하는 법감정보다 우위에 있는 거죠.

최근 몇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는 피의자 인권을 그동안 지나치게 보호해왔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력범죄 피의자에 관한 신상공개도 그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런 태도로 해결이 안 되니 문제죠. 이성적으로 판단해볼 필요가 있는데, 10대 청소년 등 모두 77명을 죽인 노르웨이의 테러범 브레이비크, 저라도 당장 쫓아가 죽이고 싶은데 21년형밖에 안 받았거든요. 한국에서 그런 판결을 내렸다면 그 판사는 이민이라도 가야 했을 겁니다. ‘너는 증오에 가득 차 있지만 우리는 관용으로 증오를 덮는다’는 태도가 있으니 증오범죄도 적은 겁니다. 증오에 증오로 맞서면 증오범죄는 계속 늘 수밖에 없어요.

용산 참사, 경찰들이 구속됐을 사건인데…

김 변호사는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담당 특별검사보(1999년)를 하셨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상임위원 활동도 하셨습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업무를 하신 건데요, 전혀 다른 입장에 놓였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의문사진상규명위 때 수사는 아니고 조사, 굳이 말하면 임의수사를 한 거죠. 사실 그 정도로는 안 될 일이 많아서 진상 규명을 많이 못했어요. 계속 강제수사권을 달라고 했는데, 이뤄지지는 않았죠. 그래서 강제수사까지는 아니어도 막힌 방에 데려가서 조사는 다 했어요. 재밌는 건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이 끝났잖아요. 당시 민간 조사관 가운데 과거 독재정권 아래에서 강압수사 받다가 감옥 갔다 온 사람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조사관이 되니까 피조사자가 요리조리 빠져나가면 자기가 당한 것과 비슷하게 있는대로 화를 내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 과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했던 전직 중앙정보부 고위 관계자도 굉장히 위축돼 떨곤 했는데, ‘관계가 역전되면 똑같아지는구나’ 하는 딜레마가 있었어요.(웃음)

수사기관은 아무래도 권력을 남용하는 속성이 있죠.

그런 본질적 속성이 있어요. 그래야만 밝힐 수 있는 진상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견제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비망록에 소개된 많은 사건 가운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던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편에 저도 눈길이 갔습니다. 사형과 무죄 선고를 오간 곡절 많은 사건이었죠. 특히 수사기관 조서의 문제를 지적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조서는 모든 진실 규명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데, 그동안 수사기관은 조서를 갖고 ‘장난’을 많이 쳤어요.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피조사자의 전혀 다른 답변이 나올 수 있거든요. 조서를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180도 바뀌는 경우가 많았어요. ‘용산참사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사가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진압 경찰 상당수를 구속할 수 있었을 거예요. 자신들이 다 잘못했다고 시인했으니, 뭘 잘못했는지 계속 캐물었다면 사건 성격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었죠. 그런데 윗선에서 뭐라고 한 건지 일순간 검사들 태도가 싹 바뀌어 정반대로 조사를 해버렸어요.

재판 절차나 관행 가운데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요.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법관의 자질과 독립성 등입니다. 큰 사건을 하다 보면 눈에 보여요. 판사가 선고할 때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표정이 일그러져 있으면 자신의 결론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승진을 걱정해야 하는 판사로서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데, 그런 판사를 보면 불쌍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대안이라면 국민배심제인데, 내 입장에서는 그것도 아직 못 미덥습니다. 왜냐면 검사든 변호사든 어느 한쪽이 연기를 잘하면 그쪽으로 넘어가기 쉽거든요. 소송법상 중요한 원칙이나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 등을 눈여겨보기보다 법감정에 치우치기 쉬우니, 그것도 위태로운 거죠.

황우석, 광우병 피디수첩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사회가 보여준 과도한 애국주의, 냉철한 비판 기능을 잃어버린 언론에 대해 몸서리쳤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납니다. 송두율 교수 사건 때는 좀더 직접적으로 네편내편 가르는 현상을 꼬집어주셨는데, 한국 사회가 그런 ‘편가르기’에 익숙해진 원인은 뭘까요?

과거 공동체 사회를 지탱해온 기둥은 혈연·지연·학연이었죠.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공동체는 무너졌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혈연·지연·학연을 대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득권층과 노동자층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지켜내지 못하면 자기도 무너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어느 한쪽 편에 서야 하고 자기편을 끝까지 지켜야 내가 산다는 생각인 거죠.

김 변호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수많은 약자를 위해 법률적 조언을 해오셨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변호하며, 혹시 삶을 대하는 태도나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진 않으셨나요?

‘야, 이 한심한 놈’이 사라지다

슬프게도 이 세상은 동물이고 식물이고 사람이고 간에 강한 쪽이 약한 쪽을 먹이 삼아 살아갑니다. 재작년 구제역 파동 때 보세요. 소나 돼지가 사람한테 먹히려고 이 세상에 난 게 아닌데 병 걸렸다고 수십 수백만 마리 생명들을 산 채로 땅에 묻었어요. 그러고는 불쌍하다 해요. 도축장에서 죽으면 안 불쌍한가요. 강자인 인간 중심의 사고입니다. 사람도 그래요. 약자들은 강자들의 제물이에요. 약자들은 머리가 모자라거나 집안이 어려워, 힘 있는 사람들한테 이용당하는 수밖에 없어요. 재개발법만 해도 그래요. 재개발이라는 국가 행위 때문에 생긴 이익을 집주인이나 건설사들이 독차지하도록 법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강자 중심으로 세상이 구성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사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강자나 약자나, 유전자와 먹이사슬을 통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거거든요. 약육강식이라는 이 세상의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서로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지요. 전에는 어려운 집 아이들이 기를 쓰고 값비싼 유명 브랜드 운동화나 점퍼를 사 입는 걸 보면, ‘야, 이 한심한 놈아’ 욕이 절로 나왔는데 이제는 ‘그래, 모든 존재는 다 자기를 내세우고 싶어 하는 거지’라고 이해를 하게 됐어요.

비망록 첫회에도 나오는데요, 김 변호사께서는 검사시보 생활을 마치고 검사가 아니라 변호사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권력과 명예를 포기하는 대신, 약자의 편에 선 것인데 그 길을 걷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글쎄요. 무슨 거창하게 처음부터 마음먹고 권력과 명예를 포기하고 약자 편에 투신한 건 전혀 아니고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리된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니까. ‘야, 이건 아니다’ 하고 부딪치다 보니 그런 게 쌓인 거예요. 의도한 게 아니고 내 성격입니다. 운명이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운명이란 바로 그 사람의 성격이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듭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건가요?

연재 마치면서 지난 글들 쭉 보는데 건건이 마음 아프고 그분들 떠오르고 그랬어요. 눈물도 나고…. 하나하나가 다 소설 감이고 영화 감이지요. 따지고 보면 모든 삶이 다 소설이고 영화 아니겠어요. 마지막 글에 쓴 대로예요. 사람과 그를 둘러싼 세상이 벌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존재의 슬픔. 아니, 고정불변의 독립된 ‘존재’란 없고 그저 이합집산하면서 변해가는 흐름이 있을 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봄이 오지요. 봄은 작년에도 왔었고 올해도 올 거고 내년에도 그다음에도 계속 오겠지만 또 그 봄은 매번 다른 봄입니다. 철학자 칸트도 물었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던졌던 물음, 나도 궁금합니다. 세상은 왜 없지 않고 있는가. 왜 이런 법칙에 따라 이런 모습으로 있는가.

정리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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