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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욕망의 두 얼굴 / 이원재

등록 2012-04-18 19:27수정 2013-05-16 16:32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보호받아야 할 다른 종류의
욕망도 있다는 게
나의 새로운 깨달음이다
어느 날 동네 빵집이 프랜차이즈 간판을 내렸다. 물어보니 빵을 직접 반죽해 굽기 위해서라고 했다. 프랜차이즈 본사 정책이 바뀌어, 보내주는 냉동반죽을 구워 팔라고 하기에 탈퇴해버렸다는 것이다. 그 빵집은 자기만의 간판을 내걸었다.

그 빵집이 떠오른 것은, 3월 말 인도네시아의 여성 기업가와 벌였던 짧은 논쟁 직후였다. 독일 베엠베(BMW)재단에서 유럽과 아시아 각국에서 40명을 초청해 자카르타에서 연 ‘유럽-아시아 영 리더스 포럼’에서였다. 나는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은 탐욕’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랬더니 이 기업가는 “탐욕은 좋은 것”(Greed is good)이라며 정색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즉답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동남아의 저개발 지역에서는 여전히 더 많은 욕망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리획득과 자본축적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탐욕’까지 가면 지나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욕망이 전혀 없다면 발전도 어렵다. 실제로 자카르타 시내 재래시장을 방문해 영세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매일 현금이 들어오면 바로 써버릴 뿐 일주일 단위 계획도 잘 세우지 않는 모습을 발견했다. 싱가포르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번 돈을 모두 송금하고 소비해버려 2년을 일하고도 모아둔 돈이 없다는 보고도 같은 포럼에서 나왔다. 이렇게 내일을 계획할 의지도, 욕망도 없는 이들에게는 욕망을 불어넣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세계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욕망과잉이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작은 충격이었다. 지나친 욕망은 너무 많은 자원 소비로 이어졌고, 기후변화 환경위기를 가져왔다. 또 지나치게 많은 부채와 위험자산 투자로 이어졌고,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불러왔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 선진국 경제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사회도 욕망과잉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언젠가 집값이 올라 대박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로 수십년 갚아야 할 규모의 빚을 내 아파트를 사는 일이 자연스레 벌어진다. 경쟁이 심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사교육이 극성이다. 국회의원 후보자의 도덕성에는 둔감하면서, 돈을 끌어와 다리를 짓고 건물을 올리겠다고 공약하면 박수를 보낸다. 그 돈은 결국 다 같이 갚아야 할 빚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보호받아야 할 다른 종류의 욕망도 있다는 게 나의 새로운 깨달음이다. 자신이 정성스레 반죽하고 모양을 만들어 구운 빵을 동네 사람들에게 먹이며 자신도 먹고살겠다는 욕망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책이 좋아서 책을 팔고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네 서점 주인이고 싶다는 욕망은 권장할 만하다. 축적과 확장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속적으로 생존하려는 욕망이다. 한국의 자영업 비율이 30%를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50대 이상 취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대부분 저소득의 불안정한 일자리다.

어떤 이들은 이를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당장 이들을 흡수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는 어차피 어렵다. 그렇다면 실업을 맞아도, 퇴직을 해도 쉬지 않고 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은 어쩌면 축복이다.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들의 영역에 거대 영리자본이 파고들어 생존 기반을 파괴하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줘야 한다. 여기에 적절한 경제적 성과와, 책임 있는 경영 과정과, 삶의 보람을 균형 있게 추구하는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잘하면 한국 사회의 부담이 아니라 안전망이 될 이들이다. 자기만의 빵을 굽고 싶은 생계형 서비스산업 자영업자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기울여볼 때가 됐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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