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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정치스릴러? 누아르? / 임범

등록 2012-05-07 19:37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권력집단 내부
분열은 왜 일어날까
5년 임기 끝나면
대통령 바뀌기 때문
한 달 사이에 이렇게 더워지다니! 봄이 짧아지긴 했지만, 한국의 사계절은 건재하다. 최근 뉴스를 보면 건재한 게 또 있다. 정치의 사계절이랄까. 임기 초와 임기 말이 이렇게 다르다니!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사법처리되는 걸 두고 하는 말이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였던 것 같다. 정권 초기엔 전 정권 측근들이 구속되고, 말기엔 현 정권 측근·친인척이 구속됐다. 김대중 정부 때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 땐 그런 일이 뜸해서 바뀌나 싶었더니,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다시 되풀이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게, 지나간 일에서 뭔가를 배운다는 것 아닌가. 1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뇌물로 권력 최측근들이 구속됐는데, 그랬다면 지금 시끄러운 파이시티 사건으로 수년 전 금품이 오갈 때, 그 당사자들이 2012년 이명박 정부 임기 말에 이 일로 구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을까. 이런 반복이 기정사실로 인정되는 듯하다. 5년 뒤엔 누가 감옥 갈 거라는 식의 우스개 아닌 우스개도 나돈다. 밀란 쿤데라는 인류의 역사가 ‘반복되는 악취미’를 가졌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반복되기 위해서는 부끄러움이나 현명함이나 감식안이 없어야만 한다.”

5년 단위로 반복되는, 부끄러움을 몰라도 많이 모르는 이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임기 말만 되면 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는 건 왜일까. 검찰 수뇌부가 차기 대권주자에게 잘 보이려고? 지금 대통령 등에 칼을 꽂는 검사를 다음 대통령이 좋아할까. 현 정부와 차기 여권 대선후보 진영 간에 협의가 있었다? 그런 조율이 쉬울까. 검찰의 수사 의지? 어떻게 봐도 왜 지금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결국은 증거가 나왔기 때문 아닐까. 임기 말이 돼야만 나오는 증거, 즉 내부 분열에 기초한 증거!

그러니까 한 편이 돼 권력 잡고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분열이 일어나고 누군가는 감옥 가는 얘기다. 그러면 정치스릴러로 접근하는 게 이해하기 쉬울까, 누아르로 다가가는 게 쉬울까. 우선 같은 편이 되는 동기가 다를 거다. 정치스릴러라면 이념, 정치성향, 당선 가능성 같은 정치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할 거다. 누아르라면 혈연, 지연이 정치적 계산을 앞설 거다. 그래서 분열이 일어났을 때도 정치스릴러라면 희생양이 자기가 되지 않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거다. 누아르라면 서열에 따라 희생양이 정해지거나, 아니라면 드러내놓고 판이 깨질 거다. 정치스릴러는 교훈을 남길 수도 있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그랬듯. 누아르는 교훈이라고 하기 애매한 ‘인생무상’ ‘권력무상’류의 감상을 남길 거다.

마침 최근에 개봉한 미국 영화 <킹메이커>를 봤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한 주지사와 선거 캠프 간부들의 이야기이다. ‘내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미국 헌법’이라고 연설하는, 진보적인 이 주지사의 이념을 좇아 모였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과 마주치면서 자기들끼리 싸운다. 물 위로 나오지 않았을 뿐, 그 전투는 더없이 치열하다. 겉으로 아무 변화가 없지만, 영화를 본 이들은 안다. 아, 이념이 저런 식으로 빛이 바랠 수 있겠구나! 깔끔한 정치스릴러였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떤가. 영포라인, 대통령 친인척, 받은 돈을 나 혼자 쓴 게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과 번복…, 남기는 교훈도 없고…, 누아르? 아니다. 내부 분열이 왜 일어날까. 임기가 끝나면 대통령이 바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헌법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쿠데타나 정권연장을 위한 개헌으로 헌법을 무시한다면, 애시당초 발생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킹메이커>도 시작부터 ‘헌법’을 말하지 않던가. 결국 정치스릴러가 맞는 모양이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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