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32번째 죽음 / 고건혁

등록 2012-05-09 19:19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당신이나
친구의 직장에서
32명이 암으로
숨지는 걸 봤는지?
고 이윤정은 1980년생이다. 1997년 18살의 나이로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한 뒤 고온 테스트 공정에서 6년간 근무했다. 2003년 봄에 결혼을 앞두고 퇴사한 그녀는 이듬해 결혼을 하고 2005년과 2007년 두 아이를 출산했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것은 그 3년 후인 2010년 5월5일. 두달 뒤 그녀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8개월이 지난 2011년 2월에야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이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했지만 재판은 1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2012년 5월7일 저녁 8시께, 그녀는 두 아이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집계에 따르면, 그녀는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32번째 노동자다. 입장이 나뉘는 것은 이 ‘32’라는 숫자에 대한 해석이다.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은 삼성 반도체의 노동 환경이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만들고 있어서, 예를 들면 고 이윤정의 경우에는 불량 반도체가 뿜어낸 발암물질이 뇌종양을 유발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자신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가 32번 반복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삼성전자가 근거로 삼는 것은 주로 2008년 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역학조사 결과다. 골자는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유발 가능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고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 사이의 관련성은 일반 인구 집단과 비교해 통계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 이 중 발암물질에 대해서는 환자들이 일했던 당시가 아닌 지금의 환경을 놓고 조사가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후속 연구를 통해서 유해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발암물질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은 근거는 후자, 요컨대 삼성 반도체 공장의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릴 가능성이 다른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이들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누리집에서 열람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결과를 비전문가로서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과학적 분석에 상식을 들이대는 위험성 역시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상식적인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만약 정말로 저 노동자들이 암에 걸린 것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것과 무관하다면, 내 주위에도 저런 경우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러분의 주위엔 어떤지 궁금하다. 20대 혹은 30대 초반의 나이로 암과 백혈병에 걸린 이들을 ‘일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지, 당신이 일하고 있는 또는 당신의 친구가 일하는 직장에서 32명이나 그런 식으로 숨진 것을 본 적이 있는지.

고 이윤정은 운명하기 전 남편에게 삼성을 용서해주자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의 남편은 삼성이 산업재해를 인정하면 그때야 용서하겠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다른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마음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작년에 법원이 일부의 경우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하긴 했지만, 그 재판이 결론이 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사이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뜨고 있다. 객관적인 조사와 그에 근거한 신속한 재판. 이미 치명적인 병을 안고 있는 그들에게 최소한 이 정도는 허락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누려야 할 이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보내야 할 최소한은 끊임없는 관심, 그리고 현금이다. ‘반올림’을 통해 노동자들의 가족을 후원할 수 있는 계좌번호는 국민은행 489701-01-472635 김재천(삼성반도체대책위).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한겨레 인기기사>

8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32살인데 왜 벌써…”
‘살인연기’ 노래방 소파…불 번지는데 13초
“성희롱 할아버지 찾습니다” 한 여대생의 ‘공개수배’
검찰에 제발로 찾아온 수십억 현금다발...왜?
‘노조 탈퇴’ 양승은 아나 “신의 계시 받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1.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2.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내란 수괴의 “자유주의자” 고백 [1월22일 뉴스뷰리핑] 3.

내란 수괴의 “자유주의자” 고백 [1월22일 뉴스뷰리핑]

법집행 전면 부정한 ‘폭동’ 배후도 철저히 수사해야 [왜냐면] 4.

법집행 전면 부정한 ‘폭동’ 배후도 철저히 수사해야 [왜냐면]

[사설] 경호처 김성훈·이광우, 언제까지 활보하게 둘 건가 5.

[사설] 경호처 김성훈·이광우, 언제까지 활보하게 둘 건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