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쥔 손은 단지 “송이송이 뜨거운 눈물을 씻어내”(이동순 <일자일루>)는 데만 쓰이지는 않는다. 고 이성부 시인에게 주먹은 각성의 울림이기도 했다. “오뉴월 주먹이 나를 갈긴다/…/ 죽음도 잃어버린 내 고향을/ 그 사람이 갈긴다/ 그 사람이 갈긴다 주먹이여/ 주먹이여 오 한번뿐인 평화여”(<주먹>)
그러나 주먹은 역시 거부와 도전, 응징의 표상이다. 정희성은 시 <맨주먹>에서 부조리한 사회에 분노하며 주먹을 불끈 쥔다. “어떻게 한 사람의 높은 담을 치솟게 하고/ 한 사람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어떻게/ 타인을 맨주먹 쥐게 하는가” 고 조태일 시인은 밭에 심어진 노란 참외에서도 어둠의 시대에 저항하는 주먹을 보았다. “누우런 주먹들이 운다/ 불끈 쥐고 불끈 쥐고 사랑을 불끈 쥐고/ 어느 놈들은 벌판에 홀로 홀로 남아/ 어느 놈들은 청과물시장 멍석 위에서”(<참외>) 스스로를 시인이 아닌 ‘전사’라고 칭했던 고 김남주 시인에게 주먹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자유를 위하여/ 사람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치켜든 싸움의 주먹은 아직도 불의에 항거하고 있나니”(<망월동에 와서>)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은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원동력이었다.(<사상의 거처>)
이 진보의 주먹이 이제는 동지를 구타하고, 민주주의를 폭행하고, 진보세력 전체를 뭇매질하는 데 쓰이고 말았다. “그러나 친구여/ 우리들의 싸움은 이래서는 못쓰지 않는가/ 사무실 문을 박살내는 곡괭이/ 식당을 부수는 함마, 유리창을 깨뜨리는/ 돌멩이, 총무를 묵사발로 만드는 주먹”(김해화 <인부일기14>) 아무리 서럽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주먹을 앞세우지 말자고 시인은 말했거늘 하물며 어디에 함부로 주먹질인가.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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