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희 언론인·전 노동부 장관
연립정권의 희망이 보이니
과잉흥분해 저러는 것일까
‘현대적 진보’로 거듭나면 다행
과잉흥분해 저러는 것일까
‘현대적 진보’로 거듭나면 다행
통합진보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투표부정 사건은 그 자체로 심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정당에 불신과 적의를 가진 국민들의 호기심도 돋워 온 나라의 화제가 되고 있다. 우선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며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을 쉬쉬하며 비밀로 할 것이 아니라, 떳떳한 당내 그룹으로 공개하여야 한다는 처방을 내리고 싶다. 햇볕을 비추면 음영이 사라질 뿐 아니라 살균도 되고 좋은 변화가 온다. 그리고 신비스러웠던 것이 진부한 것이 되기도 한다. 소설 <지리산>을 쓴 소설가 이병주씨는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경기동부연합을 ‘신화’가 아닌 ‘역사’의 장으로 끌어냈으면 한다.
그 ‘신화’라고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로 남북한 관계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의 통일조국과 이상사회 건설을 위한 열정을 우선 젊은이들의 선의로(음모가 아닌) 이해하고, 출발하려는 것이다. 통일방안 논의에는 연방제·국가연합·민족공동체 등의 말이 나온다. 나는 ‘경계선이 의미가 없는 상태’를 중간단계의 목표로 하여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정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왔다. 그렇게 되면 뒤이어 통일은 자연스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방제·국가연합 운운은 속된 말로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통합진보당의 자주파들은 연방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는 미국과 중국(넓게는 미·일·중·러)의 동북아 새 질서를 놓고 큰 틀에서의 합의가 1차적이다. 연방제든 무엇이든 남북한의 합의는 2차적이다. 따라서 연방제 등을 내세우고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소박한 민족감정에는 맞을지 몰라도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우선 힘쓸 일은 군사적 긴장 완화를 돕는 것이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서로가 상대적 안보를 추구하는 일이다. 절대적 안보의 추구는 금물이다. 한쪽의 절대적 안보는 상대방의 절대적 불안정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것은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대한민국은 법률적 완결성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북이 ‘실패한 국가’가 분명해짐에 따라 점차 남이 정치적 완결성마저 갖게 되었다. 그래서 사고방식의 선회와 국민감정의 변화가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른바 자주파의 주장은 더욱 용납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는 200개가 넘는 국가체제가 있다. 까다롭고 복잡한 이론투쟁을 간단하게 처리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많은 국가체제 가운데 어느 것이 그래도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 없다면 그 이론은 공론일 것이다. 아마 마지못해 유럽 모델, 스웨덴 모델을 말할 것이다. 그러면 일단 해결된 셈이다. 인류는 모두가 잘 해보려고 노력해왔고 그 결과가 오늘날의 세상이다.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전에 생물학에서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법칙을 배운 적이 있다. 사고방식의 발전도 역사적 발전과정을 축약적으로 반복하는 것 같다. 요는 그 과정을 빨리 극복하는 일이다.
죽산 조봉암의 진보당은 이승만 정권의 잔인한 사법살인 탓에 비극으로 끝났다. 통합진보당은 내부의 노선 차이와 부정투표 시비로 자멸의 길을 가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역사는 두번 되풀이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소극(笑劇)으로”인 것이다. 통합진보당에는 똑똑한 사람들은 많으나 현명한 지도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용광로론’을 내세운 죽산만한 인물이 없다. 거인의 시대는 가고 왜소인의 시대여서인가.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를 많이 냈을 때 과잉흥분하여 분당사태가 왔다는 해석이 있다. 이번에 연립정권 참여의 전망이 보이니까 또다시 과잉흥분하여 분당 위험이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지난 12일 중앙위의 난동사태를 보면 1960~70년대 일본의 전학련(젠가쿠렌·전국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 내부폭력투쟁이 떠오른다. 그들은 내부를 뜻하는 ‘우치’와 폭력의 독일어 게발트(Gewalt)의 합성어인 ‘우치 게바’를 무슨 자랑처럼 상투적으로 행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때를 정점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경기동부연합 통합진보당의 운명은? 이번이 현대적이고 새로운 진보세력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면 다행이다.
남재희 언론인·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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