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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제돌이와 돌고래쇼 논란 이후 / 이항

등록 2012-05-16 19:59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불법 포획된 돌고래 제돌이의 처리 문제로 시작된 돌고래쇼 존속에 관한 논란은 동물원의 미래에 대한 시민토론회로 발전하였다. 사람이 아닌 동물의 복지에 관한 문제로 공개토론회를 연 것은 서울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 사실 자체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시민토론회와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돌고래쇼는 생태설명회라는 이름으로 재개되었다 한다. 돌고래쇼에 찬성하는 시민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결정일 수 있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양쪽이 조금씩 양보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차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돌고래쇼 논쟁을 계기로 그 논의 수준을 도시에서의 인간·동물 관계 전반으로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원하든 않든 간에 인간·동물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이 동물만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유사 이래 동물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근대화와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는 동물과 관련된 독특한 형태의 사회·문화적 이슈를 양산하고 있다. 거대도시 서울시와 연관된 동물 관련 이슈의 예 몇 가지만 들어보자.

도시인은 알게 모르게 동물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면서 살고 있다. 시민들은 길고양이, 비둘기, 너구리, 까치, 참새 등 도시에 정착한 동물들과 매일 길에서 만난다. 이들을 삭막한 시멘트 정글 안에 함께 살아가는 친구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들은 인수공통질병의 발원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 동물원, 아쿠아리움, 동물쇼, 경마, 텔레비전의 동물 프로그램 등 동물을 이용하는 산업은 동물에 대한 사랑을 키워준다. 반면 동물을 존중해야 할 생명체가 아닌 희롱의 대상으로 보게 하고 야생동물에 대한 소유욕을 부추기는 부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개고기와 관련된 사회적 갈등은 전통문화, 공중보건, 동물복지에 대한 관점들이 얽히고설킨, 너무나 첨예한 이슈이다. 돌고래쇼 문제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인간·동물 관계에서 비롯한 수많은 이슈 중 일부에 불과하며, 이런 이슈들은 도시민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과 직접 연관된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동물과 관련된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문화적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역사·인문·사회·문화적 성찰에 의한 통합적 접근이 절실해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 조상들은 동물을 어떻게 생각하였고 인간·동물 관계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현대 도시인은 동물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도시에 거주하는 동물과 사람은 언제,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서로 접촉하고 있는가? 동물쇼, 텔레비전의 동물 프로그램을 보거나 동물원을 방문한 경험은 도시인이 동물을 보는 관점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논의하는 기회가 있다면 돌고래쇼 논쟁과 같은 이슈가 발생할 때 좀더 현명한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이상적인 인간·동물 관계를 위한 고민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갈 것을 서울시에 건의한다. 이것은 포럼, 워크숍, 세미나, 토론회, 연구 등 여러 형태를 띨 수 있고 전문가뿐 아니라 이해당사자와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을 인간과 동물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범적 도시로 가꾸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할 뿐 아니라 시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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