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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반바지 동맹 / 권혁철

등록 2012-05-22 19:28수정 2012-06-06 11:35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아빠,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어쩌다 아침에 넥타이를 매면 아들이나 딸이 묻는다. 1년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날이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니, 아이들의 눈엔 아버지의 넥타이 차림이 낯선 모양이다.

내가 일하는 신문사는 다른 직장에 견줘 복장이 매우 자유롭다. 영업부서나 정부부처 출입기자 등은 정장을 입지만, 대개는 편한 옷을 입고 일한다. 머리카락을 노랗거나 빨갛게 염색하거나 머리카락을 한껏 올린 펑키스타일, 꽁지 머리를 한 회사 후배들도 있거나 있었다. 나도 한때 콧수염과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적도 있었지만, “수염 깎으라”는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복장에 관대한 한겨레신문사에서도 남성이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는 경우는 드물다. 몇년 전 여름 반바지 출근 움직임이 있긴 했다. 당시 한 선배 기자가 전체 구성원에게 ‘반바지 동맹’ 결성을 제안하는 전자우편을 보냈다. 나홀로 반바지 출근은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반바지를 입고 출근해 사내에 반바지 문화를 뿌리내리자는 것이었다. 더운 여름에 남자들도 반바지를 입고 시원하게 일하면 업무 효율도 올릴 수 있고 에어컨 냉방도 줄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란 제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몇몇이 때때로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긴 했지만, 큰 호응이 없어 반바지 동맹은 시나브로 해체됐다. 반바지란 휴가지나 집에서 입는 옷이지 회사에 입고 나오는 옷은 아니라는 고정관념이 워낙 단단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수 디제이디오시는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직장인이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하지 않기란 어렵다.

최근 서울시가 한여름인 6월부터 8월까지는 민원부서를 제외한 모든 부서에서 반바지와 샌들 착용을 허용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근무 복장이 자유로운 신문사에서도 실패한 반바지 출근이 과연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에서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서울시의 정책 추진 의지가 궁금해, “남성의 다리는 털이 많아 반바지를 입으면 보기에 흉하다”고 떠봤더니, 서울시 관계자는 “필요하면 다리털 제모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농반진반으로 말을 받았다. 반바지·샌들 착용을 즉흥적으로 던진 게 아니라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의 일환으로 강한 의지를 담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점심시간에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나 서소문 서울시청 부근엔 ‘검은 양복 흰색 셔츠’(겨울) ‘양복바지 흰색 셔츠’(여름) 차림을 한 공무원들로 넘쳐난다. 마치 교복이나 군복 같은 유니폼을 입은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할 공무원이 반바지를 입는다고 혀를 찰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반바지·샌들 허용이 절전 효과뿐만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 유연한 사고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발상의 전환은 구호만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의 말처럼, 박원순 시장과 공무원들이 반바지에 샌들 신고 출근할 때는 양말을 신지 않는 패션감각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이겠다.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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