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처음엔 명확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목적지’ 말이다. 취임 초기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보다는 조금 강경한 대북정책을 펼칠 것으로 평가되는 정도였다. 이 대통령은 2008년 7월11일 제18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한다”면서도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과 공영의 길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이날은 남한의 관광객 박왕자씨가 금강산에서 피격돼 사망한 날이다. 이런 모호함 탓에 야권과 진보진영에서는 취임 첫해 이 대통령에게 “그럼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존중한다는 것이냐 무시한다는 것이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다.
하지만 목적지가 다르면 말하지 않더라도 가는 길이 달라진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이 대통령에게 “6·15 선언을 존중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나 정책 등에서 흐릿했던 ‘흡수통일’의 그림자가 차츰 뚜렷하게 자리잡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통일하는 것이 궁극 목표”(2008년 11월19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라고 밝히고, “북한 주민의 변화”(2010년 12월3일 사회통합위 연석회의)를 강조했다. 또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2011년 6월21일 민주평통자문회의 간부 임명식)이라는 등 흡수통일을 상정하는 발언의 수위를 높여왔다.
이명박 정부 통일정책의 밑바탕인 ‘흡수통일’과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진행했던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은 거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한민족의 미래 목적지다. 어떤 곳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말 그대로 민족의 운명이 달라진다. 가령 ‘흡수통일’이라는 목적지를 살펴보자. 그 목적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통합이 아니라 영속화한 분쟁이다. 흡수통일에 이르는 동안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거의 100%다. 요행히 그런 파멸을 피해 남한 정부가 북한 전체를 통치한다 해도, 곧 내란 상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정부가 2400만명의 북한 주민을 남한의 기초생활수급자 수준으로 지원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저항은 점차 격렬해질 것이다. 다시 남북 주민의 소통은 불허되고, 북한 주민들의 폭동 등에 대비하기 위해 계엄군이 북녘에 진주하는 상황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그 갈림길은 다른 목적지를 향해 열린 장소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19대 국회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갈림길이 돼주길 바랐다. 그곳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통일정책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하고, 필요하다면 목적지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총선 전 많은 야권 후보들도 ‘공존과 번영’으로 목적지를 바꾸는 꿈을 얘기했지만, 야권은 계파와 파벌의 이익에 매몰돼 총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오히려 현재는 19대 국회가 더 우경화된 길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높다.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18대 국회에서 폐기됐던 ‘북한 인권법’ 재발의를 준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진보적인 통일정책 논의에서 밑거름이 돼야 할 통합진보당이 비레 대표 문제로 오히려 19대 국회의 우경화에 빌미를 줄 수도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나마 6·15 공동선언 12돌을 앞두고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심포지엄 등을 통해 남북 화해라는 목적지를 재조명하고 있어 다행이다. 국회가 갈림길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데 실패한다면, 어쩌면 시민사회를 포함한 전체 국민이 다시 통일의 목적지 논의에 보다 활발하게 참여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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