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민주통합당 이해찬 후보가 신임 대표로 선출된 뒤 선거 결과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서 인터넷 커뮤니티 몇 곳을 방문해보았다. 가입자가 매우 많고 평소 시사토론이 활발한 곳들인데도 전당대회에 대한 의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통합진보당 사태나 임수경 의원 탈북자 발언 파문을 놓고서는 수많은 글이 게시되고 토론이 벌어졌던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현상이었다. 이런 냉담, 무관심은 관리형 대표가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이해찬 대표는 친노세력이 내세우는 ‘유능함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참신함, 변화라는 대중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유능함은 대체로 교육부 장관, 당 정책위 의장, 국무총리 등 집행의 역할에서 두드러졌다. 강력한 기획력과 추진력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당내 선거에서는 매번 고배를 마셨다. ‘버럭해찬’이라는 별명에서 드러나듯이 그에게는 독선의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독선은 집행 과정에서는 추진력과 결합하면서 약이 될 수도 있으나, 지지층을 대변해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고 이견을 조정해야 하는 정당 정치지도자에게는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해찬 대표의 독선적인 면모는 일정한 정당성이 뒷받침될 경우 외부와 전선을 만들어내는 데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보수집단의 ‘종북몰이’ 등 색깔론 정국에서 그의 강성 이미지는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면서 모바일투표에서 역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듯 여당과 강력한 대치가 이루어지는 정치상황에서는 독선적 면모가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는 적군과 아군이 명확히 구분되는 전시 상황이 아니라 수많은 중립지대의 유권자들과 살을 부딪치고 그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이다. 또한 외부와 대치하는 것보다 내부의 다양한 요구와 갈등을 조정해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해찬으로 대표되는 친노세력은 폐쇄적 가족공동체의 이미지에 가깝다. 자신들이 옳다는 자기확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이후 희생자·박해자의 위상과 결합하면서 폐쇄성·배타성이 강화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중들은 친노세력을 희생자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의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심화 등 사회경제적 위기에 책임을 져야 할 세력으로 본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는 옳음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 내부를 향한 성찰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의지와 결합할 때 역사적 퇴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유능함의 아이콘이었으나 그가 추구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대변하는지 찾기는 어렵다. 그는 대중적 지도자보다는 유능한 기획참모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가치와 노선은 대중이 정당과 그 정당의 지도자를 지지하고 기대를 거는 토대다. 또한 정치적 에너지와 열정의 진원지다. 2012년 대선이 새로운 어젠다, 즉 대중의 요구들이 모이고 경합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판을 만드는’ 역할이 그에게 부여된 역사적 책무이다. 역사적 부담은 크나 대중의 관심은 낮고 동원력은 취약한 이해찬 지도부, 이 난제를 뚫고 진짜 유능함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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