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지난주 초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했던 ‘지금 유럽발 위기는 대공황에 버금가는 것’이라는 발언이 전해지면서 주식시장은 요동을 쳤다. 그 진의를 궁금해하던 중, 나는 중국을 방문해 현지 전문가들을 만나게 됐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아시아적 맥락을 반영한 기업 평가모델 개발을 위해 베이징에서 연 중국 사회책임경영 전문가위원회에서였다.
“지난해 중국 기업 1000곳 이상이 사회책임경영(CSR) 보고서를 발간했다.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궈페이위안 신타오 대표가 최근 중국 기업 동향을 설명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한국 기업 중 사회책임경영 보고서를 낸 곳은 지난해 100곳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4~5년 전만 해도 중국보다 많았는데 그새 따라잡혔다.
사회책임경영 보고서는 기업이 재무적 사업 성과뿐 아니라 탄소배출, 노동조건 등 환경 및 사회적 성과를 함께 공개하는 보고서다. 그런데 상하이와 선전 증시에서는 상장기업의 사회책임경영 보고서 발간을 의무화한 상태다. 사회책임경영을 지향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내용을 공시까지 해야 상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다 중국 정부는 국외투자 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 5위 해외투자국이 된 중국이 책임있는 투자자라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여전히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는 체제이면서, 한편에서는 서구식 시장원리를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국가 통제 체제를 계속 끌고 가는 것도 비효율적이지만, 세계 자본주의 위기를 불러온 극단적 시장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꺼림칙할 것이다. 결국 사회책임경영은 국가 주도 경제와 극단적 시장주의 사이의 새로운 선택지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시 김석동 위원장의 발언을 떠올렸다. 그의 진의는 ‘자본주의가 대공황 뒤 케인스주의와 수정자본주의로 넘어갔던 것처럼, 이번 위기 뒤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가 나타난다’는 뜻이었다. 최소한 중국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국가 주도성을 약화시키면서 시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을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사회적인 것으로까지 확장시켜 시장의 부작용을 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유럽에서도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의 유럽 위기는 무모하게 투자하고 지나치게 써버려서 맞이한 위기다. 유럽 재정위기는 국가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많이 빌린 돈을 써버린 뒤 갚을 방법이 막막해진 위기다. 금융권 입장에서는 무분별하게 투자한 뒤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커져 생긴 위기다. 미래 후손들의 자원을 당겨 써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투자와 소비를 없애고 빚만 갚아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대공황 같은 사태로 번지면서 삶의 질을 과거로 돌려놓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빚을 내서 소비하고 위험을 가리지 않고 투자하는 경제로 돌아갔다가는 거품만 더 키울 뿐이다. 결국 투자와 소비를 일으키되 환경, 고용, 지역공동체 등의 가치를 담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경제, 환경, 사회를 균형있게 고려하는 지속가능발전이 유력한 발전모델이 될 것이다.
김석동 위원장의 말은 옳았다. 중국은 국가와 시장 사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 있다. 유럽에서는 단기적 투자수익률을 절대선으로 여기던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은 1960년대 이래 국가가 계획하고 통제하는 경제를 운용하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시장을 메시아로 삼았다. 이제 세번째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고민할 때가 됐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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