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6·10 민주항쟁 25주년을 기념하면서 우리의 성장발전이 민주화에 기반을 둔 것임을 새삼 확인한다. 2차 대전 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사례로 한국이 회자될 때마다 그 산업화의 토대가 민주화였음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4·19혁명은 민주한국의 지표 혹은 역사의 감시자 구실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4·19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활성화시킨 사건이요 혁명이다. 4·19혁명은 반독재·인간해방의 길을 열었고, 창의성을 담보하는 사회를 만들어 산업화도 가능케 했다. 이것은 자유세계와 독재세계, 남북의 격차를 가져오게 한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 7월부터 4·19 유공자에게 보상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는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지금까지 견지해온 혁명성에 종지부를 찍고 역사 속의 여느 사건처럼 ‘너마저’ 속화되는구나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청렴으로는 지킬 수 있어도 돈으로는 지킬 수 없는 것이 명예와 긍지다. 아무리 정당한 보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혁명적 가치를 오염시키고 그 역사를 형해화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4·19 유공자 보상에 유감을 표하는 것은, 4·19 유공자에게 그런 보상이 부적절하다고 간주되어서가 결코 아니다. 보상이 4·19혁명의 가치와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보상에 유감을 표하는 데는 이유가 또 있다. 한국의 국가보훈체계가 혼란하게 된 것은 금전 보상을 개입시켰던 특정 사건과 관련이 있다. 4·19혁명 유공자의 국가유공자 인정 요구는 원래 보상보다는 명예에 있었다. 최근의 여러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명예와 금전은 공존하기가 어렵다. 4·19 공로자의 국가유공자 진입은 보상을 전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공로자회 등의 끈질긴 요구는 보상의 근거까지 마련했다.
4·19 유공자 보상은 몇가지 문제를 더 안고 있다. 4·19혁명에 참여했던 분들 중 국가유공자 신청을 아예 사양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 보상을 언급한다면 인간의 당위를 모독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4·19 ‘민주혁명’의 유공자로 인정된 이들 중 훼절하여 반민주의 동조세력이 되었거나 유신을 찬양한 이들도 있다. 반민주·유신 찬양론자들까지 4·19 공로자로 보상한다면, 이런 법을 제정한 취지마저 의심받을 수 있다.
4·19 유공자에게 주어진 일괄 훈격인 ‘건국포장’이 독립유공자의 ‘건국포장’과 같은 훈격임을 들어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4·19 유공자 심사에서 자주 거론되었지만, 독립유공자의 경우 건국포장은 1년 이상 독립운동을 했거나, 10개월 이상의 옥고를 치른 이에게 수여된다. 4·19 유공자에게 ‘건국포장’의 훈격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독립유공자와 동등한 예우를 요구하는 것은 독립운동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제 4·19 세대는 결단해야 한다. 보상을 거부하고 혁명 정신과 명예를 견지할 것인지, 보상 앞에서는 4·19 세대도 별수 없더라는 비아냥을 감수할 것인지. 자기를 희생시킴으로 4·19혁명이 가능했듯이 보상 문제에서도 보장된 이익을 희생하는 결단이 요청된다. 보상을 거부하고 그 법률을 폐기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4·19묘지에 누워 있는 혁명가들과 유명을 달리한 동지들에 대한 책무이기도 하다. 4·19 유공자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으로 답해야 한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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