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은 큰 선거가 잇따라 치러지는 해에 기자들을 대상으로 선거보도 교육과정을 개설한다. 지난 4월24일부터 6월15일까지 진행된 국내 강의와 미국 현장 방문에 참여했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대통령선거에 대해 전문가들의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은 경제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에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초접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흥미로웠다.
워싱턴에 있는 아메리칸대학의 리처드 베네데토 교수는 갤럽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여론조사 수치를 소개했다. 5월14일부터 6월3일까지 진행한 조사에서 오바마와 롬니에 대한 지지율은 46%로 그야말로 ‘딱 붙어 있는’ 상태였다. 성별로는 여성이, 연령별로는 젊을수록 오바마 지지가 높았다.
눈길이 가는 수치는 연간 가계소득별 지지율이었다. 3만6000달러 이하 저소득층은 53% 대 38%로 오바마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3만6000~8만9999달러의 중산층, 9만달러 이상 고소득층은 45% 대 49%로 롬니 지지가 높았다. 저소득층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전 대표 지지가 훨씬 높은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현상이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두 나라는 정당의 역사와 유권자들의 정치적 경험이 너무 달라 직접 비교가 곤란하다. 다만 ‘1%의 부자가 아니라 99%의 서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야당이 저소득층에서 인기가 없는 우리나라 쪽이 뭔가 잘못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잘못됐다면 이유가 뭘까? 주로 야당에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진정성 부족, 정책 대안의 구체성과 일관성 결여,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메신저의 부재 등이 원인일 것이다. 쉽게 말해 야당은 왜 서민들이 야당을 찍어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상임고문이 지난 17일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약속은 “일자리 정부로 일자리 혁명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복지 확대를 통해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 사회서비스 부문에 수많은 일자리가 생기고 자영업에 몰려 있는 과잉인력을 흡수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정보통신, 바이오, 나노, 신재생에너지, 문화, 콘텐츠 분야의 산업을 일으키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제·산업 정책을 일자리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약속했다. 일자리 혁명을 일으킨 대통령으로 평가받겠다는 것이다. 선언 다음날 모든 일정은 일자리 관련이었다.
손학규 전 대표는 지난 14일 출마 선언을 했다. 2020년까지 70% 이상 고용률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20살부터 70살까지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해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손학규 전 대표의 일자리 대책은 허황된 구호가 아니다. 그는 경기지사 시절 74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4년 동안 평균 7.7%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일자리에 관한 한 분명한 업적이 있는 사람이다.
두 사람의 일자리 정책은 이처럼 매우 강렬하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에게 좀처럼 각인되지 않는다. 역시 당사자들의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 ‘손에 잡히는 정책’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유권자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철저하게 이해관계에 따라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허공의 신기루를 좇는 ‘메시아 신드롬’에서 아직은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뉴스를 전하는 언론도 각성이 필요해 보인다. 대다수 언론은 대선주자들이 내놓는 정책에 대해 시시비비를 잘 가리지 않는다. 대신 지역구도, 정치세력, 이벤트 등 비본질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편리하게 보도하는 추세다. 진정한 의미의 정책선거가 이뤄지려면, 정당, 후보자, 언론, 유권자 모두 아직은 갈 길이 먼 것이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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