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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종박·종북의 적대적 공존 / 권혁철

등록 2012-06-19 19:37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짬짜미라도 했던 것일까. 40년 전 남북은 유신헌법과 사회주의헌법을 같은 날 공포했다. 1972년 12월27일 서울. 지금은 헐린 중앙청에서 유신헌법 공포식이 열렸다. 이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하는 유신체제가 출범했다. 주체 61년(1972년) 12월27일 평양. 우리의 국회 격인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 회의가 사회주의헌법을 공포했다. 이날 ‘김일성 유일체제’의 버팀목인 주석제가 등장했다. 유신헌법은 평화통일과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를, 사회주의헌법은 조국통일과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강조했다. 억압·철권통치 체제를 정당화하는 양쪽의 상황 논리도 판박이였다.

분단 이후 남북의 권력자들은 적대하면서도 의존하고, 의존하면서도 적대해 왔다. 상대방의 존재를 자신의 권력 기반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끊임없이 활용했다. 이들의 ‘적대적 공존’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시들부들 힘을 잃었다.

남북관계에서 사라졌던 적대적 공존이 지난 5월 이후 여의도 정치판에서 부활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을 일심으로 따르는 새누리당 안 종박세력(친박이라고도 하나 내가 보기엔 종박이 적확한 표현이라 이 글에선 종박이라고 적는다)과 당권파라고도 불리는 통합진보당의 일부 종북세력이 그 주인공이다.

박근혜 의원은 6월1일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을 겨냥해 “국가관을 의심받고 또 국민도 불안하게 느끼는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의 발언 뒤 새누리당 황우여·이한구·한기호 의원은 ‘종북 감별사’를 자처하며 야권 전체를 겨냥해 종북몰이 공세를 펴고 있다. 12월 대선 때 야권연대를 원천봉쇄하거나 힘을 빼려는 노림수란 분석이 많다.

이런 종박의 종북몰이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과 당 중앙위 폭력사태로 궁지에 몰렸던 당권파한텐 비상 탈출구를 제공하고 있다. 6월7일 통합진보당 서울시당이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제명하자, 당권파 쪽이 “수구공안세력에 의해 벼랑 끝에 몰린 동지들을 벼랑 아래로 떠밀어버리는 처사”라고 맹비난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당권파는 종박의 ‘협찬’을 얻어 ‘민주절차 파괴자’에서 ‘매카시즘 피해자’로 변신했다. 당권파의 이런 기사회생을 지켜보며 종박이 종북의 숙주 노릇을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기생충에게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과 피신처를 제공하는 생물체를 숙주라고, 식품의약품안전청 위해예방정책과 블로그는 설명한다.

요즘 새누리당이 ‘국가보안법 엄격 적용’을 종북 해법이라고 내놓는다. 나는 버퍼링이 심한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갑갑했고, “종박은 종북의 숙주”란 심증을 굳혔다. 당권파가 존망의 위기를 돌파하는 두 가지 비책이 있다. ‘그건 조중동프레임이야’란 주문과 ‘탄압받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논리다. “이석기가 어떤 소리도 맘껏 할 수 있도록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이석기류의 한심한 말을 사상자유 옹호 차원에서 편들어 주거나 보호해 줄 필요가 없어진다. 법률로 탄압하면 살아남지만, 사상자유시장에서는 거들떠보지 않게 되는 역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며칠 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영국 사람 존 밀턴이 말한 ‘사상의 자유시장’이야말로 종북에 대한 가장 확실한 처방이다. 그동안 진보를 참칭했거나 과잉대표해 왔던 종북이 지난 5월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된 ‘킨텍스 심야 활극’에서 민낯을 드러낸 뒤 지리멸렬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나는 요즘 종박세력의 종북몰이 다걸기(올인)는 ‘사상의 자유시장’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12월 대선 야권연대 무산에 급급해 종북과의 ‘적대적 공존’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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