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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스탠드얼론 콤플렉스 / 박권일

등록 2012-06-25 19:17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더 많이 연결(network)될수록 더 똑똑(smart)해진다고들 말한다. 10년 전을 돌이켜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각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과 기사들을 내 책상에서 순식간에 내려받아 읽어볼 수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처음 방문하려는 ‘맛집’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다. 친구들은 30초도 되지 않아 답변을 날려준다. “거기 예전엔 맛있고 인심도 좋았는데, 매스컴에 뜨고 나서 불친절해지고 위생상태도 엉망이 됐어요.” “단골들 발길 끊은 지 오래됐죠. 대신 근처의 여기 가보세요. 요즘 제일 핫한 곳.” 대도시는 현기증 날 정도의 와이파이 망으로 뒤덮였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동작하는 내비게이션과 언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의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하기 불가능해져 버렸다.

‘스탠드얼론’(stand-alone)이라는 말이 있다. 대개 컴퓨터 같은 연산처리장치가 다른 장치와 연결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이 장치가 랜(LAN)이나 인터넷 등의 네트워크에 접속되면 이제 그 장치는 더 이상 혼자(스탠드얼론)가 아닌 셈이다. 일본의 에스에프(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티브이판의 부제가 바로 ‘스탠드얼론 콤플렉스’였다. 인간의 두뇌가 전자두뇌화된 근미래 사회를 그린 에스에프 애니메이션의 걸작이다.(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역시 훌륭한 작품들이다.)

스탠드얼론 콤플렉스는 자신의 전자두뇌가 연결망에서 끊어져 ‘스탠드얼론’ 상태로 있는 걸 불안해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이 작품 속에는 전뇌화에 반감을 가져 일부러 ‘스탠드얼론’ 상태로 남아 있는 사람들도 나오고, 19세기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운동)처럼 전뇌화한 인간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도 등장한다. <공각기동대> 티브이판에 흐르고 있는 이념적 구도는 그래서 ‘반문명주의-인간중심주의’ 대 ‘기술진보주의-반인간주의’의 대결이다.

스탠드얼론 콤플렉스, 다시 말해 ‘개별자의 불안’은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노예의 불안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한 사람의 개인으로, 역사 앞의 당당한 단독자로 서지 못하고 대중의 흐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이들이 바로 노예가 아닌가. 그러나 이런 규정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모든 사람이 초인이 될 수는 없다. 개별자의 불안이 발생하는 원인을 파고들어가면, 결국 이 세상에서 혼자서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무자비한 권력이나 압도적 폭력 앞에 단독자로 섰을 때 절대다수의 개인은 자유의지를 가진 숭고한 영혼이 아니라 벌거벗은 한 마리의 동물이 된다. 그 나약함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근대 이후 진보주의의 기반이다. 천부인권이라는 개념이 발명된 이유는 인간이 본래 고귀하고 자유로운 존재여서가 아니라,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약하고 비루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안은 사회적인 것이다. 단지 인터넷에 접속되지 않았을 때만이 아니라 ‘스탠드얼론’ 상태의 개인, 개별자로서의 인간은 모두 불안한 존재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살고 있다지만, 우리의 법적·문화적 권리들은 일순간 무(無)로 돌아갈 수 있다. ‘그날 용산’의 망루 위에 인권과 시민권이 존재하고 있었던가? 특히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에 강하게 저항할수록 그 사람은 급격히 ‘스탠드얼론’ 상태에 내몰리게 된다. 분명한 건 더 많이 연결되는 개인일수록 더 안전해지고 더 강해진다는 사실이다.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류 호들갑에 전혀 동의하지 않더라도,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씨가 끝까지 견뎌내는 데 트위터가 큰 힘이 됐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더 많이 연결될수록 신상 털릴 확률도 더 높아진다는 게 함정이지만.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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