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정당이나 지도자의 역량을 따질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어젠다 리더십이다. 어떤 어젠다(의제)를 꺼내놓고, 어떤 어젠다를 중심으로 쟁점을 형성할 것인지 하는 문제다. 이런 점에서 디제이(DJ) 이후 민주당의 어젠다 리더십은 ‘젬병’이다. 돌이켜 보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란 사회경제적 이슈가 처음으로 핵심적 정치 쟁점으로 등장할 때에도 민주당의 역할은 미미했다. 뒤늦게 편승한 것뿐이다.
민주당의 이런 둔감함은 민주화 이후 민족·민주문제를 중심으로 전선을 운영해온 데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분단이 계층 차원의 프레임 형성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 즉 비민주적 분단체제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전략적 선택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무지했다거나, 사회경제적 문제에 너무 소홀했다는 비판만큼은 피하기 어렵다.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미친 영향에 놀란 탓인지 민주당은 그 후 대담한 용기를 발휘했다. 3+1로 불리는 무상 시리즈 복지정책을 내놓고,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신선한 변화였다. 2007년 대선에서 우클릭한 상태에서 비비케이(BBK) 문제만 물고 늘어지는 한심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에 비춰 보면 기대하기 어려운 혁신적 정책 이니셔티브였다.
2011년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승리라는 것도 사실 민주당이 지방선거 이후에도 복지 어젠다를 놓지 않고 쟁점으로 계속 발전시켰기 때문에 주어진 보상이었다. 당시 여야의 역관계는 총선 승리, 정권 교체가 눈앞에 있다고 여겨질 정도로 야당의 확연한 강세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런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총선 패배의 근본 원인은 공천 실패나 전략 부재가 아니다. 민주당이 야권 통합으로 과거와 다르게 간다는 혁신의 동력을 상실한 탓이다. 따지고 보면 박원순의 승리와 안철수 현상이 야권에 던지는 메시지도 다름 아닌 혁신이었다. 따라서 대선·총선 패배로 이뤄진 야권 분립의 구도를 해소하는 통합도 혁신의 계기일 뿐 본령은 아니었다. 게다가 통합은 역대로 야권이 위기 때마다 써먹던 전통의 수법 아니던가. 그런데도 민주당은 통합에 몰입했고, 그 통합마저 기득세력의 타협적 공존으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졌다.
지방선거에서부터 총선까지 민주당은 복지 등 사회경제적 이슈에 집중할 때 이겼고, 다른 문제에 정신 팔 때 졌다. 즉,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쟁점다발,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라는 말이다. 민주당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민족문제가 아니라 민생문제로 각을 잡았어야 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무상급식에 버금가는 사회경제적 이슈를 쟁점으로 만들어냈어야 했다. 그래야 민생의 고통에서 비롯되는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를 투표 동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1945년 영국 노동당이 복지플랜으로 전쟁영웅 처칠의 보수당을 꺾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생활수준이 하층인 60살 이상 노년층에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비율이 안철수의 그것에 견주어 3배에 이르렀다. 중하층의 경우 4배였다. 생활수준이 낮은 노년층이 압도적으로 보수 후보를 지지하는 패턴은 사회경제적 이슈를 중심으로 정당 간에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금 계속 정치·도덕적 이슈에 매달리고 있다. 소탐대실의 헛발질이다. 부패·비리·특혜 등의 사안이 당장 대중적 공분을 일으키기는 쉽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과 무관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초점과 동력을 잃어버린다. 먹고살기 힘든 문제를 중심으로 차별화에 나서면 흥분지수는 떨어져도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빨리 사회경제적 이슈를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삼는 어젠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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