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런 생각 없는 이명박 정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일본과 난데없는 군사협정을 체결한다더니 곧바로 연기했단다. 주권국가 간의 협정이 무슨 사막의 신기루라도 되는 것인지 있다가 갑자기 없어졌단다. 일본과의 군사협정이 그리 급하고 중대한 것이었나? 왜? 북한이 곧 붕괴될 것 같아서? 김정은 정권이 이내 쿠데타라도 당할 것 같아서? 그래서 북한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협정이 그렇게 급했던 것인가? 생각이 그런 방향으로 내리쏠려 일본이 아직 국민들의 머릿속에 ‘우리’(we-ness)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나라로 자리잡지 못했음을 알지 못한 것인가?
이번 군사협정 사달은 2년 전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를 상기시킨다. 공통점이 있다. 논의와 협의 과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재작년 환수 연기 결정 당시 직접 관련 부처인 국방부가 보이지 않았다. 협상은 청와대가 맡아서 했다. 대한민국을 반주권국가(semi-sovereign state)로 존치시키는 결정을 몇 사람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번에도 국방부·외교통상부는 적극 관여하지 못하고 청와대가 주도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가 말해주는 것은 세 가지다. 의식의 부재, 제도의 부재 그리고 전략의 부재.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여전히 민족주의는 핵심 요소이고, 일본은 아직 역사적 죄악을 용서받을 만큼 반성과 속죄를 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 국민 또한 그런 일본과 비밀을 나눌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을 정부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무의식이다.
국민의 안위와 민족의 미래에 직결된 안보와 북한, 통일 문제를 상시로 논의하는 제도는 있는 것을 없애고 출발한 것이 잘못이다. 무제도다.
이전 정부에서는 매주 목요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외교·안보·통일 관련 장관이 만나 의견을 조정했다. 제도가 정책을 만들어가는 형태였다. 그래서 주요 정책이 결정되면 그 결정의 주체는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회였다. 기자 생활을 했던 필자도 매주 목요일이면 국가안보회의 상임위 결정사항을 취재하기 위해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교안보 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거론되는 이름이 너무나도 단순하다. 매번 청와대 외교안보전략 기획관이다. 외교안보수석은 이름도 모를 지경이다. 제도 대신 사람이, 그것도 매우 제한되어 있는 인물들이 정책을 만든다는 얘기다. 대통령도 자리를 비운 사이 졸속으로 국무회의를 통과시키고 슬금슬금 서명해서 협정을 만들어내려고 했다는 것은 현대정치의 맥락과는 매우 동떨어진 행태이다. 무전략이다. 여론과 언론의 검증과 지지 없이는 어떤 정책도 힘을 받을 수 없음은 굳이 언설이 필요 없는 일이 아닌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갑작스럽게 남북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하고, 2009년 8월에는 남북한의 정세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군축협상을 제의하고, 2010년 8월에는 뜬금없이 통일세를 거론하더니, 대북정보 공유를 위한 것이라면서 불투명한 이웃 일본과 군사협정을 꺼내드는 정부는 과연 국민과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깊은 고뇌와 잘 짜여진 절차,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차원적인 대처가 그 속에서 전혀 묻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생각을 좀더 깊이 하고, 정책 논의의 시스템을 갖추고, 또 이를 효과적으로 수립·실행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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