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무상보육은 근래 몇 년간 진행된 정치세력간 복지정책 경쟁이 낳은 중요한 성과였다. 하지만 시행 4개월 만에 지방재정 고갈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당장의 비판은 충분한 준비 없이 무상보육을 추진한 정부 여당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12월 대선 국면에서는 새누리당과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보다는 복지 이슈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온 야권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복지 확충에 따르는 재원문제가 지나치게 빨리 현실화되면서 야권이 주장한 보편복지, 무상복지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돌이켜보면 무상급식이 핵심 어젠다로 떠오른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정책이 선거의 향배를 가를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선거였다. 당시 무상급식 이슈는 집권 여당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야당을 대안으로 인정하고 지지하게 하는 근거가 됐다. 또한 정치에 무관심하고 소외된 다수에게 정치가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어젠다였다. 극도의 양극화로 인해 다수가 일상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대중의 삶을 옥죄는 문제들이 개인의 잘못이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를 통해 풀어가야 하는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가 말한 ‘갈등의 사회화’의 정치적 위력을 보여준 이슈인 것이다.
복지 이슈가 지닌 파괴력을 경험한 민주통합당은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의 ‘3무1반’ 정책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선별적 복지에 맞서 보편적 복지를 내세웠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복지 이슈는 총선·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수 있는 ‘킬러 어젠다’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4·11 총선에서 복지 이슈는 더이상 관심을 모으지 못했고, 선거에서 정책은 사라졌다. 그리고 야권이 패배했다.
4·11 총선에서 복지 이슈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복지국가 건설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야권의 의지와 진정성의 문제가 크다. 능력과 의지가 빠진 정책 공약은 정략적인 ‘레토릭’에 불과하며 대중을 설득하기 어렵다. 또한 위기에 직면한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적극 대응했다.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행복한 복지국가 건설을 정강정책 1순위로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70% 복지를 내세운 새누리당과 100% 무상복지를 강조한 야당의 차이는 복지의 범위 문제로 약화됐다. 아울러 재원 마련,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주체의 능력 문제로 협소화되었다. 그 결과 복지국가가 우리가 치열하게 꿈꾸고 실현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재원이 많이 드는 무상 제도로 간주되면서 결국 ‘무상’의 덫에 빠지게 됐다. 복지 이슈에서 열정과 꿈이 사라지고 시민들이 져야 할 ‘부담’만 남게 된 것이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복지 이슈가 다시 우리 사회를 흔드는 어젠다가 될 수 있을까? 스웨덴 복지국가를 설계하고 건설한 실천가이자 이론가 비그포르스의 말대로 복지국가는 ‘잠정적 유토피아’다. 치열하고 치밀한 실천을 통해서만 조금씩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하지만 현재 복지 이슈는 뇌관이 제거된 밋밋한 이슈, 되면 좋지만 그리 절박하지 않은 이슈가 되었다.
그 뇌관은 무엇이며 어떻게 건드릴 수 있을까? 복지국가가 개개인의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이슈임을 치밀하게 부각시켜야 한다. 복지국가를 만드는 과정은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다수의 이해와 이로 인해 희생을 치러야만 하는 소수의 이해가 충돌하는 갈등의 영역, 긴장의 영역이라는 점을 드러내야 한다. 따라서 복지 이슈는 좀더 치밀해지고, 위험해지고, 절박해져야 한다. 이것이 변화를 꿈꾸는 정치세력의 역할, 정당의 역할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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