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며칠 전에 본 기사가 몸 어딘가에 얹혔다. 속이 아니라 맘이 체한 것 같았다. 잊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아직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다 지나온, 다 지나왔다는 생각에 너그럽게들 돌아보는, 그 시대에 그 친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친구가 아프단다. 강기훈씨가….
지금 보면 황당한 게 한둘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안기부가 곳곳을 도청하고, 그런 첩보가 모여 청와대를 거쳐 검찰로 전달되고, 그걸로 큰 수사가 시작되곤 했다. 운동권의 분신자살 사건이 몇차례 발생하자, 한 대학 총장이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했다. 발언 직전에 안기부 직원이 그 총장을 만났다는 보도도 있었다. 여하튼, 그 발언 직후 검찰에서 분신자살한 이의 유서가 대필됐다며 강기훈씨를 연행했다. 1991년,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 그때 난 법조기자를 했다.
자살이 집단적으로 계획됐다면, 운동권은 생명을 도구로 여기는 집단이 될 터. 정권 차원에서의 득실은 분명했다. 검찰이 총대를 멨다. 공안부 아닌 강력부가 맡았다. 공안부가 나서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일까봐 일부러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안부에선 ‘잘못 짚은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수사와 재판이 그랬다.
강씨 쪽에서 제출한 증거자료의 훼손 논란이 오래갔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검찰은 범행 시간, 장소, 경위를 특정하지 못했고 공소장 상당부분을 추정으로 채웠다. 유일한 증거인 국과수의 필적감정도 논란에 휩싸였다. 다른 필적감정 결과가 다르게 나왔고, 담당 국과수 직원이 다른 사건에서 돈 받고 허위 감정한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이 결정적 증거로 확신했던 필적 자료가 엉뚱한 사람의 글씨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것만 법정에 제출하면 다 끝날 것”이라며 목청 높이던 검사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황당한 건 법원에도 있었다. 안기부 직원이 판사 방에 들어가 운동권에 대한 책자를 건네주고 브리핑을 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전민련과 전대협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 판사도 있었다. 당시 내 기사에 실린 1심 재판부의 말이다. “강씨 주변의 인물이 모두 운동권이라 이들의 진술을 모두 믿기도 어렵지 않으냐… 유죄를 선고했을 경우 제3자가 나타나 내가 유서를 썼다고 양심선언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 다른 사건과 달리 이 사건에서 검찰과 변호인 쪽의 증거를 모두 믿을 수 없다고 차버리는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니냐.”
물증은 물론이고, 심증까지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진행된 수사와 재판 끝에 강씨는 유죄가 확정돼 3년을 꼬박 감옥에서 살았다. 그 뒤로 정권이 네번 바뀌었다. 강씨와 같은 시기에 법정에 섰던 다른 시국사범들은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했다. 국가보안법, 집시법 위반 사범뿐 아니라 폭력범, 방화범까지도. 국회의원, 장관도 나왔다. 그렇게 모두가 그 시대를 지나왔다. 그 시대의 억압과 비상식, 불합리를 깨끗이 청산하진 못했어도, 이 정도면 견딜 만하지 않느냐며 잊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추억으로, 낭만으로, 술안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만 없다면. 아직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혀 그 시대에 남아 있는 그 친구만 아니라면.
그때 강씨는 무척 침착했다. 재판부로부터 “마치 남의 일 보듯 하는 것 같다”는 평까지 들었다. 나는 그 담담한 표정을 핑계삼아 ‘속을 잘 다스리는구나, 그러면 잘 지내겠지’ 하며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간암이 심하단다. 지난 4년 사이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단다. 그가 낸 재심 신청이 고법에서 받아들여져 대법원에 간 지 3년이 다 돼 가는데, 법원은 결정을 미룬다. 재심 결정이 나도, 다시 재판을 하려면 갈 길이 먼데….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한겨레 인기기사>
■ 조갑제, MB에 “한일군사협정 밀어붙여라” 훈수
■ 수백억 들인 ‘연평도 신축대피소’ 빗물 줄줄, 부실시공 의혹
■ 만삭 임신부를 또…중국 ‘강제낙태’ 폭로 잇달아
■ “저는 엄마가 아니라 미친년이었어요”
■ [화보] 더울 땐, 물놀이가 최고!
■ 조갑제, MB에 “한일군사협정 밀어붙여라” 훈수
■ 수백억 들인 ‘연평도 신축대피소’ 빗물 줄줄, 부실시공 의혹
■ 만삭 임신부를 또…중국 ‘강제낙태’ 폭로 잇달아
■ “저는 엄마가 아니라 미친년이었어요”
■ [화보] 더울 땐, 물놀이가 최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