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과 관련해 두 가지 편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윤리적 정치관이다. 지난 16일 박근혜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것을 바로잡는 것을 사당화라고 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것이다.”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사당화 비판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익숙한 오만이 거슬리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생각이 낳을 결과다.
박 의원은 옳은 일을 한다면 과정 따위는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5·16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으로 보는 것도 이런 관점 때문이다. 박 의원을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 이렇게 평가했다. “정치문제를 다룰 때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고,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는 특성이 있다.” 이 말에 따르면 박 의원은 정치를 옳고 그름으로 보는 윤리적 정치관을 가지고 있다. 위험하다.
정치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 대안 중에서 다수의 의견 등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대안에 선악이 있다거나 선택에 시비가 있다고 보면 상대를 부정하게 된다. 내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동등하게 취급해 주는 ‘동등한 공존’이 민주주의다. 그래서 샤츠슈나이더는 민주주의를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라고 한 것이다. 정치를 옳고 그름으로 보면 과정을 무시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다. 선진국에서 보듯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시켜야 서민의 삶이 좋아지고, 민생이 챙겨진다는 점에서 이런 정치관의 본질은 결국 반서민 반민생인 셈이다.
또다른 편향은 반정치관이다. 정치를 거추장스럽거나 더럽거나 심지어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왜 민주적 국가에서 정치를 통해 국가 대소사를 결정하고, 선거를 통해 최고 결정권자를 뽑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반정치관은 윤리적 정치관의 이면이다. 역시 위험하다. 이런 관점에선 정당이나 의회를 존중하지 않는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안철수 교수가 이런 혐의를 적지 않게 받았다.
안 교수와 가까운 박경철 원장이 서울시장 출마설이 분분할 때 이렇게 말했다. “안 교수는 정치는 자기 체질이 아니라고 믿지만 행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시장직은 정치가 아니라 행정의 영역이라고 보고 있다.” 정치와 행정을 분리해서 보는 관점은 역대 대통령들이 정당이나 의회를 무시할 때 흔히 썼던 프레임이다. 또 정치를 배제한 행정 중심의 국가운영이 곧 박정희 모델의 골간이고, 정치 축소가 신자유주의의 근본 명제 중 하나란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정당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투표하라’는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았다. 이번에 발간한 책에서 그는 정당정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당정치’가 아니라 ‘정당’이 문제라고 해명했다. 다행이다. 인물을 보고 찍으라는 주장이 듣기엔 근사해도 실제에선 정당 무시로 나타난다. 정권교체는 정당 간의 교체이지 인물이 바뀌는 게 아니다. 또 정당을 보고 표를 주는 것이 현대 민주정치의 핵심이다. 정당투표가 아니라 인물투표가 성행하는 나라일수록 민주주의의 질이 낮다. 그러므로 정치나 정당을 폄훼하는 반정치의 태도로는 결코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잘못된 생각이야말로 만악의 원인이다. 잘못된 정치관을 가진 사람이 설사 대통령이 되더라도 서민이 행복한 강한 민주주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없는 사람일수록 정당이나 정치를 통해 강자·승자에게 타협을 강요해야 살림살이가 나아진다. 결국 잘못된 정치관은 ‘가난한 민주주의’를 낳게 된다. 그래서, 걱정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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