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문재인 후보의 미소는 충혈된 눈을 감추지 못했다. 손학규 후보의 웃는 얼굴도 평소와 달리 어색했다. 김두관 후보는 아예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해찬 대표가 “정권”을 외치자, 8명의 후보들이 주먹을 쥐고 “교체, 교체, 교체”라고 합창을 했다.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요란했지만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23일 국회 민주통합당 대표실에서 열린 대선후보 공명선거실천 협약식은 그렇게 15분 만에 끝났다.
민주당이 질식사 위기에 처했다. 두 개의 바위에 눌려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세론’과 ‘안철수 현상’이다.
비극은 2010년 6·2 지방선거, 2011년 4·27, 10·26 재보궐선거 승리에서 비롯됐다. 야권연대만 성사시키면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낙관론이 판을 쳤다. 연말 연초 시민통합당과 합당에 성공하고 정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추월하자 총선·대선 승리는 기정사실화됐다. 기득권 세력의 견고한 카르텔과 박근혜를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는 ‘근거 없는 비관론’으로 비판을 받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민주통합당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제 정파는 배지에 눈이 멀어 밥그릇 싸움을 벌였다. 그사이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꿨고 ‘경제 민주화’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총선 결과는 투표일 한참 전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한 뒤 정당 지지율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대선주자들도 문재인 후보만 겨우 1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을 뿐 김두관·손학규 등은 한자리에 머물고 있다. 민주당은 이제 끝장난 것일까? 아닌 것 같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중요한 것은 언제 바닥을 치느냐일 것이다. 지금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절박하다.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지 못하거나, 안철수 원장에게 야권후보를 넘기게 된다면, 또는 본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노무현 정치’는 최종적으로 실패하는 것이다. 어쨌든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김두관 후보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지지율 답보로 허덕이다가 경선에서 지게 된다면, 경남지사 자리만 여당에 헌납하고 그 책임을 몽땅 뒤집어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재기가 어려울 것이다. 손학규 후보도 이번에 실패하면 대통령 꿈을 접어야 한다. 그가 평생 쌓아온 경륜이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막이라는 얘기다.
민주당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서 열린다. 정치생명을 담보로 건 이들의 절박감이 민주당을 살릴 수 있다. 절박감에서 열정도 나오고 아이디어도 나온다. 런던올림픽과 휴가철이 끝나고 민주당 순회경선이 본격화하는 8월 말~9월 초가 되면 지금과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대선 전에 한두 차례 지지율 교차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에서는 정반대 흐름이 잡힌다. 총선 승리에 취한 박근혜 후보는 지키려고만 한다. ‘지금 이대로 주욱’이 전략인 것 같다. 경선규칙을 양보하지 않은 것, 이한구 원내대표를 주저앉힌 것이 이런 맥락이다. 심지어 5·16 쿠데타를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는 아버지의 인식에도 못 미친다. 비난이 쏟아지자 “저처럼 생각하는 국민도 많다”고 했다. 국민들과 싸우겠다는 자세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얼굴 표정도 좀 살벌해졌다.
오만과 방심은 패배로 귀결된다. 1997년과 2002년 한나라당이 정권을 놓친 이유가 그것이었다. 최근 강남의 눈치 빠른 유권자들이 “박근혜 되긴 되겠어?”라고 걱정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박근혜 후보와 다른 맥락이지만, 안철수 원장의 한계도 보인다. 안 원장은 “제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제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아니다. 정치 참여는 개인이 욕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안 원장의 말에는 수동형이 너무 많다. 정치의 본질은 능동이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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