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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주체적 탈북자’로 살아남기 / 김보근

등록 2012-07-25 19:21수정 2013-05-16 16:30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까부시는 모임’(동까모) 소속이었다는 전영철(52)씨의 기자회견 모습은 슬펐다. 그는 지난 7월1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약 40분에 걸쳐 차분한 목소리로 왜 김일성 주석의 생일날인 4월15일에 북한 내 동상을 파괴하려 했는지 설명했다. 요지는 거액의 성공보수를 제안한 미국과 남쪽 탈북자 단체들의 ‘그물’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그런 ‘유혹’에 넘어가게 된 배경으로 어려운 탈북자의 삶을 얘기할 때 가슴이 아팠다. 남한의 탈북자들이 “어디에서나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으며, 직장을 얻기도 어렵고 얻어도 곧 잃게 된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그가 2010년 4월 함경북도 청진에 살다 탈북해 같은 해 11월 국내에 들어왔으며 합동심문조의 조사와 하나원 교육을 거친 뒤 강원도 춘천에서 무직으로 지냈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몇차례 연기된 동상 파괴 사전답사를 위해 북한 국경도시에 들어갔다 6월19일 새벽 2시에 체포됐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한달 만에 기자회견장에 선 것이다.

기구한 운명이다. 국내 입국 때 여러 정보기관 요원으로 구성된 합심조 조사에서 어떤 ‘이용가치’가 있는지 낱낱이 조사당했을 그가, 이번에는 북한에서 기자회견이라는 ‘선전의 장’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북한은 전씨의 기자회견 하루 뒤인 20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가장 악랄한 표현”이라며 “우리로 하여금 핵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남쪽 탈북자 단체들은 이번 사태에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전영철씨가 남한에서 활동했다고 주장하는 동까모와 ‘북한인민해방전선’(북민전)을 특정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탈북자 단체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높이려 하는 행동들이 사실은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데 기여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많은 탈북자 단체들은 남한에서도 가장 강경한 극우 목소리에 ‘편승’해 있다. 북한을 향해 삐라를 뿌리고, ‘동상을 까부수는 꿈’을 이야기하고, 김일성·김정일 화형식을 거행하는 데 앞장선다. 이런 행동의 배경에는 본인들의 판단도 있겠지만, ‘돈’의 영향도 클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 보수적 대북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렸다. 북을 강하게 비판할수록 지원금도 풍부해진다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편승 전략’은 올바른 탈북자 생존 모델이 되기 어렵다. 남한 사회에서 탈북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통일에 대한 기여’일 것이다. 극우 목소리에 편승하거나 주도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이런 행위에 대해 많은 남한 주민들이 비판적일 것이다. 제대로 된 통일정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명박 정부의 지원금 몇푼을 남한 주민들의 지지로 판단하면 오산이다. 결국 탈북자들이 설 자리만 계속 줄어든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김정은 체제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고 있다. 현재 절실한 것은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남북의 공동번영’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북에서 살아봤고 남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들이야말로 현실성 있는 협력 방안들을 내놓을 수 있는 적임자다. 탈북자들이 내야 할 목소리는 ‘극우 편승’이 아니라, 이러한 자신들의 고유한 목소리여야 한다. 이렇게 탈북자들이 ‘주체적 목소리’를 낼 때에만 남한 사회를 떠나야 하는 제2, 제3의 전영철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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