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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남에 바치는 마지막 찬가, 싸이 ‘강남스타일’

등록 2012-08-06 19:18수정 2012-08-07 15:17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야! 한국사회] ‘강남 스타일’의 종언 / 박권일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발표되자마자 인기 폭발이다. 유튜브에 올라간 뮤직비디오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싸이는 대중들이 그에게 욕망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영특한 엔터테이너이고, 키치적 감수성을 블록버스터의 스케일로 뽑아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이번 노래도 ‘싸이답다’고 할 만한 것이었다.

이 신나는 노래를 먹먹하게 틀어 놓고 신나게 따라 부르다가 문득 ‘강남 스타일’이란 말에 멈칫한다. 강남 스타일? 근데 이게 뭐지? 노래 가사에선 ‘품격 있지만 놀 땐 잘 노는 남녀’를 가리키고 있지만, 사실 그런 이들을 굳이 강남 스타일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 대전, 광주, 부산 등에도 격조 있지만 잘 노는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을 게다.

그럼에도 대전 스타일이나 광주 스타일이 아니라 강남 스타일인 까닭은 싸이가 강남 출신이어서다. 그러면서 그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엘리트가 아니라 잘 노는데 웃기게 생긴 부잣집 막내아들 이미지여야 한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설령 싸이가 대전 사람이라 해서 ‘대전 스타일’이란 노래가 이렇게 인기를 얻을 것 같지는 않다. 이 노래는 ‘광주 스타일’이나 ‘부산 스타일’이 아니라 반드시 ‘강남 스타일’이어야 한다. 오랫동안 강남은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중심부’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그걸 알고 있고, 싸이도 마찬가지다.

싸이
싸이

오늘의 한국인들은 강남이라는 공간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는 ‘능멸’이다. 탈법과 투기로 부를 축적한 속물과 졸부들이 교양 있는 척 거들먹거리는 행태에 대해 깔보고 무시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는 똑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왕후장상에 따로 씨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한국인들은 경험으로 안다. ‘나도 이번에 한방만 터지면…’이란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한국은 계층 상승이 그만큼 광범위하게, 또한 강렬하게 실현됐던 사회다. 능멸의 반대편에 ‘선망’이 있는 것은 그래서다. 나도 언젠가는 성공해서 강남 아파트로 진입하겠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물질적 욕망. 강남에 대한 능멸이 선망을 압도할 만큼 강했던 적은 지금껏 한번도 없었다.

정치학자 잉글하트가 만든 ‘물질주의’와 ‘탈물질주의’의 도식에서 한국인은 언제나 극단적 물질주의자였다. 물질주의는 쉽게 말해 부국강병과 경제중심주의 등을 의미하고 탈물질주의는 민주적 참여,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 등을 뜻한다. 세계적으로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보다 물질주의적인 국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국인의 물질주의는 최고조에 달했지만 그 이후 10여년 동안 서서히 낮아지고 있다.

이것을 곧, 한국 사회에서 대안적 가치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긴 어렵다. 한국 진보정당의 처참한 현황만 봐도 그렇다. 그보다는 거품경제의 붕괴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의 병적인 강남 선망은 세련된 문화나 우아한 전통에서 비롯한 게 아니다. 8학군, 아파트, 주상복합의 ‘물질주의 삼각형’이 빚어낸 마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강남 타워팰리스의 집값이 반토막 나고 강남 주요 아파트들의 가격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강남 스타일의 종언’이 임박했다. 국민의 대오각성이 아니라 거품의 붕괴에 의해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2012년 발표됨으로써 의도치 않게 아이러니를 획득한다. 강남에 바치는 마지막 찬가처럼 들리는 까닭이다. 2006년 노래였다면 그냥 ‘재수 없었’을 것이다.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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