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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정신의 보신탕 / 김진호

등록 2012-08-15 20:14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올림픽이 끝났다. 스포츠의 범람이 보름 넘게 지속되는 동안 세상의 많은 사연들과 문제제기들, 성찰들은 깊숙이 침수되어 있었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유별난 사회가 아닌데도 모든 지상파 티브이 방송은 대부분을 스포츠로 채웠다. 뉴스까지도. 사회 구석구석을 낮밤 가리지 않고 스포츠가 점거한 것이다.

나는 거의 모든 종목의 게임 룰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경기들을 시청했다. 또 대부분의 종목들은 선수들의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았다. 그러다 보니 나의 관람 방식은 한국이 이기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고, 금메달에 집착하는 것이었다. 금메달 예상 선수들이 탈락했다는 뉴스에 불안해했고, 의외의 선수들이 금메달을 연일 받으면서 만족스러워했다. 한국 선수가 부당한 판정으로 불이익을 당했다고 하면 먼저 분노했고, 심판과 상대편 선수들에게 적대감을 품었다. 또 금메달 수로 세계 최상위 그룹에 속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졌다.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을 올림픽과 마주치게 하는 절대 매체인 티브이 방송은 그런 점에서 더하다. 방송 진행자와 해설자들은 내용의 침착한 전달이나 전문적 안내보다는 승부에 집착했고 소리만 고래고래 질러대는 경우가 허다했다. 티브이는 국민의 흥분과 승리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매체였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상대하는 나라와 그 선수들은 우리가 이겨야 하는 대상일 뿐, 그 나라나 선수들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하여 이 세계 최대의 국제스포츠 제전은 세계를 서로 소통하게 하고 이해하게 하며 화합하게 하는 데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우리의 지상파 티브이가 재현하는 올림픽은 그랬다. 세계는 스포츠를 통해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우리와 타자만이 존재할 뿐이고, 타자는 우리의 미친 존재감을 위한 단순 대상물에 지나지 않았다.

몇몇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 상승의 일등공신이 된 것으로 유명해진 <힐링캠프>에 메달을 딴 유도 선수들이 출연했다. 그들의 얘기 가운데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이 장애등급을 받은 선수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세계 최고의 신체능력을 인정받은 그들이 실은 장애인이었다.

순간 우리의 올림픽에 대한 광분, 우리식 올림픽의 재현 방식이 선수들에겐 이렇게 나타나고 있었구나 하는 의구심이 솟구쳤다. 그들만이 아니라 많은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의 몸도 그랬을 것이다. 또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실패한 선수들도 그랬다. 과도한 운동으로 손상된 연골이 재생될 시간을 주지 않는 스케줄로 그들의 몸뚱이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숱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회복할 시간을 신체에 허용할 수 없게 하는, 오직 승부에만 집착하게 하는 스포츠 메커니즘이 가장 강인한 몸을 가진 선수들을 훼손된 몸의 소유자로 만들어버렸겠다.

하여 이 국제적 스포츠의 제전은 몸은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오직 승리 하나만을 추구했던 성공한 선수들이 들려주는 무용담을 통해 비로소 삶의 즐거움을 겨우 얻을 수 있는 슬픈 제전이다. 비루한 일상을 위로받는 출구가 이것밖에는 없는 사람들이 누리는 ‘빵과 서커스’, 그것을 위해 국가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몸을 그렇게 훼손시켜야 했고, 국민은 그런 훼손된 육체로 승전보를 안겨준 선수들의 무용담으로 정신의 보신을 체험하려 했다.

그러나 이 정신의 보신탕은 국민을 퇴행시킨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 외에는 모든 것을 타자화하는 생각의 연습을 하였고,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정복욕이 주는 쾌감의 기억 한 줄을 마음속에 새겨놓았다. 또한 그런 방식의 스포츠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삶의 비루함과 쾌락의 시스템을 바라보고 성찰한 시간을 우리는 또다시 놓쳐버렸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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