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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소격동 잔혹사 / 노형석

등록 2012-08-20 19:18

미술관을 뚝딱 지으려다 불이 난 서울 소격동 기무사 터를 처음 점찍은 이는 조선 태조 이성계다. 법궁인 경복궁 옆구리에 왕실 사무를 보는 종친부 관아를 들였다. 그 북쪽엔 도교 제사를 지내는 소격서가 설치됐다. 이곳 공간 점유를 둘러싼 논쟁은 16세기에 시작된다. 도교를 배척한 조광조는 폐지를 주장했고, 논란 끝에 소격서는 임진왜란 뒤 사라져 동네 이름으로만 남았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1863년 권좌에 오른 뒤 종친부 증축부터 단행했다. 1865~68년 경복궁 중건의 시발로 종친부에 인수전 등을 신축했다. 궁궐과 다름없다고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1907년 종친부를 없앤 데 이어, 1929년 종친부 주요 시설들을 대부분 뜯고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 의원을 짓는다. 학생들은 서대문감옥에서 사형당한 독립투사들 주검을 적잖이 가져와 해부실습을 했다고 전한다.

60년 4·19 혁명 당시엔 집단자살한 권력자 이기붕 일가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망명을 앞두고 구슬픈 표정으로 2인자 가족의 빈소를 들렀다. 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병원 구내에 정권 친위기구인 보안사령부를 들여왔다. 79년 10·26 당시 총 맞은 박정희 대통령이 병원으로 실려왔을 때 “코드원이 죽었다”는 귀띔을 받고 유고를 먼저 포착한 이곳 주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정권 장악을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그를 포함한 하나회 군벌은 12·12 쿠데타 뒤 기무사 본관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90년대 미술관 건립운동을 벌인 미술인들 사이에선 “진혼 굿을 해야 할 것”이란 말들이 돌았다. 정권 임기 안 완공이라는 목표 아래 미술관을 짓던 노동자 4명이 다시 여기서 죽어나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독립투사, 권력자들 원혼에 노동자들의 죽음까지 깔고서 개관을 준비하게 됐다. 정말 푸닥거리 굿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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