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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토탈 리콜’ 22년 전과 후 / 임범

등록 2012-08-20 19:22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며칠 전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1990년 영화 <토탈리콜>을 봤다. 20년도 더 지나 다시 보니 마치 1970년대 영화를 보는 듯했다. 왜 이렇게 촌스럽지? 내 기억엔 세련되고 긴박감 넘치는 영화였는데…. 남자들 옷의 어깨가 어찌 그리 넓은지,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얼굴이 코딱지만해 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인의 기준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닌가 보다. 섹스 심벌이던 샤론 스톤도 통통해 보였다. 그때 찬사를 받았던 특수효과나 화성의 배경화면 같은 것들은 저예산 비(B)급 영화를 연상케 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이야기 방식이었다. 먼 미래, 주인공은 공사장 노동자이다. 일상이 따분하다. 사이버 여행을 시켜주는 회사를 찾아간다. 메뉴를 고른다. 여행지는 화성이고, 자기 신분은 특수기관원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 스타일도 정한다. 회사 직원이 말한다. 화성에 가서 반란군 편에 서서 그곳을 해방시키고 사랑도 얻을 거라고. 주인공은 특수의자에 앉아 여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도중에 사고가 발생해 그곳을 빠져나오고, 곧바로 기관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쫓기면서 알게 된다. 그는 진짜로 특수기관원이었는데 보스를 배신하고 화성의 반란군을 도우려 했단다. 화성을 해방시킬 결정적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보스에게 붙잡혀 기억이 지워졌단다. 주인공은 결국 반란군을 도우러 화성으로 간다.

그러면 이건 진짜 현실인가, 아니면 사이버 여행 프로그램인가. 90년판 <토탈리콜>은 어느 쪽인지 헷갈리게 하는 장치를 여러 군데 심어놓았다. 이 장치는 한때 극의 긴장을 높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커다란 농담, ‘꿈이면 어떠냐, 영화가 그런 것 아니냐’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지막에 여행사 직원 말대로 화성을 해방시키고 사랑까지 얻은 주인공이 여자와 키스하며 말한다. 꿈만 아니면 좋겠다고. 물론 꿈 아닌 현실로 해석하는 게 정답이겠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대상화하는 태도로 인해 영화에 유머와 여유가 스몄다. 팔이 잘려나가고 눈알이 튀어나오는 장면도 우스꽝스럽고, 돌연변이가 가득한 화성 유흥가를 비출 땐 여행 온 것 같은 여유가 전해졌다. 아날로그식 특수효과가 이 분위기에 어울렸다. 그런데 이런 유머와 여유가 지금 영화에도 통할까.

2012년판 <토탈리콜>을 봤다. 22년 동안 대중의 미학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이런 블록버스터의 기획자들은 대중을 잘 알 테니까 그 변화를 잘 반영했겠지 싶었다. 확실히 달랐다. 내용은 유사한데 새 버전은 공상과학이기보다 액션스릴러에 가까웠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진짜 현실인지, 프로그램인지 헷갈리게 하는 장치를 걷어냈다. 이야기를 대상화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유머와 여유도 사라졌다. 분명한 현실에서 도피와 추적, 격투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등장인물이 줄고 이야기가 단순명쾌해진 대신, 다채로운 액션이 내러티브가 돼 영화를 채웠다. 당연히 특수효과나 배경화면의 사실감은 높아졌다.

영화에서처럼 사이버 여행에 비유해보자. 같은 미션이 주어졌더라도 1990년 버전은 이것저것 보고 여러 사람 만나는 여행이 될 거다. 사람에게 속고 자기가 하는 일이 맞는지 의심도 할 거고. 반면 2012년 버전은 미션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리며 쫓고 쫓기기에 바쁜 여행이 될 거다. 여유는 없고 스릴은 많은, 이를테면 롤러코스터만 열심히 다종다양하게 타고 오는 것과 비슷한…. 그러고 보니 요즘 스리디(3D) 바람까지 가세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상당수가 후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발전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과연 대중의 취향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건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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