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씁쓸하다. 중국을 방문한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일행이 지난 14일 중국 쪽과 나선경제무역지대관리위원회와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관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든 생각이다.
우선은 기쁜 소식이다. 이는 북한이 한발 더 개혁과 개방 쪽으로 나아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최근 보인 파격 행보들이나 농민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경제관리개선조처라는 ‘6·28 조치’가 도입됐다는 소식 등을 묶어 판단할 때,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시장 활용과 대외 개방에 상당히 열린 자세를 가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경제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과의 이번 합의는 정말 바람직한 진전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한반도 경제공동체’라는 미래가 좀더 왜소해지는 느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북한이 중국 경제의 영향권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비유하자면, 남북 경협이 이명박 정부의 5·24 조처에 발이 묶여 있는 사이, 북-중 경협은 이제 ‘2인3각’으로 뜀박질을 하는 단계에까지 온 것이다. 북한은 중국과의 경협을 통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는 김정은 제1비서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발을 맞추는 것은 남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북한과 함께 ‘번영’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쪽도 결국 남한이 아닌 중국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같은 민족을 두고 어떻게…’라며 북-중 경협을 빠르게 확대해가는 북한을 원망하다가도 ‘엠비(MB)의 초코파이’를 생각하면 우리가 그런 항의조차 할 자격이 있나 싶다. 엠비의 초코파이란 지난해 북한이 심각한 수해를 입었을 때 이명박 정부가 대북 수해지원 물품으로 초코파이를 제시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북한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6~7월에도 큰물 피해를 입었다. 많은 수재민이 발생하고, 재산 피해도 컸다. 국제사회에서 지원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자 이명박 정부가 50억원 상당의 수해지원 물품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북한이 “식량과 시멘트 등을 제공해달라”며 이에 호응했다. 수해 복구에 가장 필요한 것을 보내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이 요청한 물품들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초코파이와 영유아용 과자 등을 중심으로 물품을 보내겠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정부의 대북 수해지원은 무산됐다. 지난해 정부 차원의 대북 수해지원이 무산된 데는 ‘인도적 지원은 수혜자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보내야 한다’는 대원칙을 저버린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 좀더 컸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필요할 때는 제대로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우리가 아쉬울 때만 민족을 찾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올해 또다시 북한의 수해가 심각하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8월4일까지 사망 169명, 실종 400여명, 이재민 21만여명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그 뒤에도 집중호우가 이어진 점을 고려하면 피해액은 그사이 더욱 늘었을 것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이 지난 3일 336t의 곡물을 긴급지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국제사회의 지원 움직임 또한 분주하다. 지난해와 닮은꼴이다. 우리 정부는 수해지원을 검토하되 5·24 조처의 원칙은 훼손하지 않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올해도 ‘엠비의 초코파이’를 볼지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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