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서 있기도 힘들 것 같은 높은 굽의 킬힐을 신고서 온갖 어려운 안무를 소화해내는 여성 아이돌을 보고 있자면 음악인이라기보다는 운동선수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오디션을 통과하여 합숙소에 들어가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금욕적인 수련의 생활을 감내한 끝에 군무를 칼같이 소화할 수 있는 신체적 기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연습생들 사이에서 데뷔를 위한 경쟁, 데뷔 이후에는 발에 챌 정도로 많은 아이돌그룹 사이에서 성공을 경험한 끝에 남들이 막 경력을 시작할 20대 후반에 은퇴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훈육과 성장, 그리고 은퇴의 과정으로 구성된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은 음악보다는 체육, 구체적으로는 엘리트 체육의 그것과 정확히 닮아 있다.
사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디지털 음원의 도래로 인해 음반시장이 붕괴에 이른 2000년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최적화된 시스템이 바로 아이돌이다. 어차피 음악은 팔아도 돈이 안 되니 음악 외적인 면, 특히 시각적인 면에 대한 투자를 통해 완성도를 높였고,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음악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아이돌의 원산지인 일본과 유럽의 이른바 ‘선진 시장’에 먹힐 만한 질적 완성도를 가진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마치 한국의 엘리트 체육이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왔던 것처럼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은 일본과 유럽으로 진출했고, 케이팝이 되었다.
음악시장이 붕괴되는 가혹한 상황을 이겨냈다는 점에서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는 이로서 존경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더하다. 물론 직업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경쟁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어릴 때부터 일반적인 생활인으로서의 경험을 완전히 박탈당한 채 몇년 동안의 훈육을 거쳐 그중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심지어 그게 하나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어 ‘음악을 하려면 마치 케이팝처럼’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케이팝에 열광하는 현재의 담론은 그 화려한 이면에 한국 음악시장의 비루한 현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음원 정액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로 인해 디지털 음원의 가격이 세계 시장 표준가격 1200원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00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음악을 팔아봐야 돈이 안 되기에 예능을 하고 광고를 하고 드라마를 한다. 그것도 부족하니 이제 해외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외국에서 한 곡을 팔면 국내에서 열 곡을 파는 것 이상의 수익이 난다는 건 단순한 산술, 그리고 해외 시장이라고 하면 껌뻑 죽는 정부와 매체들의 관심을 끌 만한 떡밥이 되어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주가를 높여준다는 게 좀더 복잡한 산술이다.
최근 유튜브 동영상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싸이의 사례에 대해 매체들은 새삼스레 소셜미디어를 통한 입소문의 힘을 강조하며 마치 그것이 해답인 양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마치 김연아나 박태환이 피겨스케이팅이나 수영의 해법이라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몇몇 개인의 뛰어난 재능과 노력이 빈약한 현실을 뛰어넘은 희귀한 사례이지 전체 음악산업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피겨스케이팅이, 혹은 수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지만, 음악에 있어서 그 답은 꽤 명확하다. 이것저것 모두 다 엄청나게 잘하는 ‘국가대표’가 되지 않아도 음악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줄 수 있는, 음악을 통한 기본적인 수입의 보장. 즉 음원 정액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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