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정치부 기자
지난 8월28일 53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 인도적 북한 지원 단체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밀가루 3000t을 지원하겠다”며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막는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정부 차원의 수해 복구 지원과 식량 지원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날인 29일 이들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새누리당 39명, 민주통합당 38명 등 국회의원 88명의 의견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72.4%의 국회의원들은 민간 부문의 대북 지원은 남북간의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해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시민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10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시민 1012명의 여론 조사를 보면, 75.8%의 시민들은 다음 정부가 대북 정책을 더 유연하게 하거나 포용 정책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67.8%는 금강산 관광 재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더 적극적이다. 지난 3월12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보수·진보를 망라한 남북관계 전문가 7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81.9%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시급히 확대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또 남북 경제협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77.8%였다.
북한 체제에 비판적이라고 알려진 탈북자 의견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지난 8월29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1년 탈북자 127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76.9%가 남한의 대북 지원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대답했고, 62.3%는 대북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야 하는 정부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0년 ‘5·24 조치’ 이후 민간 기업의 금강산·개성 관광과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전면 중단시켰으며, 정부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 역시 모두 중단했다. 현재도 북한의 홍수 피해에 대해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적십자, 유엔아동기금, 유엔세계식량계획 등 국제기구들이 대거 지원에 나섰으나, 한국 정부는 한달 넘게 “필요하면 검토하겠다”는 공허한 말만 되뇌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 체제다. 시민이 정부와 의회의 대표들을 뽑고, 이들이 시민을 대표해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민 다수가 반복적으로 표시한 의사가 정부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선거에서 이겨 집권한 정부는 시민으로부터 정책 집행의 제한적 권한만 부여받았을 뿐인데, 어떤 정부는 주권을 위임받았다고 착각한다”며 “선출된 사람은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판단한다는 ‘자유 위임’과 선출한 사람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는 ‘기속 위임’ 사이에서 정부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시민의 의사를 국가 정책에 적절히 반영할 장치를 마련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미국처럼 대통령의 임기 중간에 의회 선거를 두거나, 과거 노태우 정부가 제안했던 중간평가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총선거나 신임 투표가 임기 중간에 있다면 아무리 간이 큰 대통령이라도 시민 의사에 반하는 정책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시민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대통령을 임기 중에 해임할 수 있는 ‘시민 소환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제도는 이미 지방자치단체장을 상대로 시행하고 있다.
정부가 시민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이유는 당위적일 뿐 아니라 경험적이다. 적절한 시간과 정보가 주어지면 시민 다수는 어떤 위대한 지도자보다도 더 현명한 결정을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도 시민 다수의 뜻에 따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김규원 정치부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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