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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포츠머스 조약의 그늘 / 노형석

등록 2012-09-04 19:18

1905년 오늘 미국 버지니아주 군항 포츠머스에서 한반도 운명을 판가름한 조약이 맺어졌다. 1904년 조선·만주 패권을 놓고 발발한 러일전쟁의 마침표를 찍은 이 조약은 여러모로 해괴한 협상의 산물이었다.

한달 협상 기간 내내, 국력을 소진한 승전국 일본은 전쟁 여력이 남은 패전국 러시아의 눈치만 봤다. 중재를 맡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국 땅을 협상 장소로 내놓고 훈수를 둔 것도 그랬다. 일본군이 우리 수도를 점령했느냐고 큰소리치는 러시아 전권대표 세르게이 비테는 배상금 요구에 코웃음을 쳤다. 일본 전권대표 고무라 주타로는 배상금 12억엔과 남사할린 할양을 간청하다시피 했다. 갑을이 뒤바뀐 협상 끝에 러시아는 관심 없던 남사할린을 떼어주되 배상금은 한푼도 안 주고 도장을 찍었다. 조약 2조에서 한반도의 일본 점령을 열강이 인정했다고 말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러시아는 한국 정부 합의를 조건으로 일본의 우선적 이권을 인정한다고만 명기했다. 노정객 이토 히로부미가 두달 뒤 궁궐에 고종과 대한제국 대신들을 가둬놓고 억지 합의를 꾸며 을사늑약을 통과시킨 건 바로 포츠머스의 문구를 의식한 탓이었다. 조약 내용에 격분한 일본 군중은 폭동을 일으켜 관공서를 불태웠다. 일제는 굴욕의 분풀이를 을사늑약 강요로 한 셈이다.

얼마 전 미국 워싱턴 대한제국 공사관을 문화재청이 매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포츠머스 조약에 따른 을사늑약의 후과로 일제가 5달러에 운영권을 빼앗아간 유산이다. 일본이 독도를 내놓으라고 다시 으르렁거리는 것도 기실 포츠머스의 그늘이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기점이자, 해역 독점관리권을 일본에 넘겨줘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됐기 때문이다. 이 조약을 욱일승천의 제국을 떠올리는 상징으로 추억하는 이들이 지금도 우리 이웃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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