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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삼성과 애플을 넘어 / 이원재

등록 2012-09-05 19:13수정 2013-05-16 16:29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애플과의 특허소송이 벌어진 미국 법정에서 삼성전자 수석디자이너가 했던 증언은 눈물겨웠다. 그는 ‘하루에 2~3시간만 자면서 개발에 몰두했고, 이 때문에 아이를 출산했지만 정기적으로 모유 수유를 할 수조차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외신들은 전했다. 삼성전자가 엄청난 노력을 들여 독자적으로 스마트폰 디자인을 만들어냈다는 증언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아기 엄마가 아기를 돌볼 수 없을 정도로 장시간 일해야 했다는 증언을 한 셈이다.

삼성과 애플 사이의 세기의 특허소송에서는 애플이 단단히 승기를 잡은 듯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특허 등을 침해했다며 1조2000억여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평결문을 냈다. 특허권자의 권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의견을 낸 것이다.

논란도 거셌다. 미국 배심원들이 애국심에 치우쳐 애플에 편파적인 평결을 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애국심은 본질이 아니며, 모방을 통해 성장하던 한국 대기업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두 기업은 현재 경제의 승자일 뿐이다. 미래 경제의 대표선수가 될 수는 없다. 재판 과정을 전반적으로 훑어보면서 든 생각이다.

삼성 디자이너의 증언은 역설적으로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세계 스마트폰 업계 1, 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가, 직원들은 아기를 제대로 돌볼 수조차 없도록 일을 시키는 기업이라는 증언이 나온 셈이다.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임직원들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기업 본연의 사회적 책임 가운데 하나다. 앞서가는 기업이라면 가족친화경영은 경영의 기본이다.

창조경영을 외치고 디자인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삼성전자는 유능한 추격자(fast follower)다. 창조해서 이기는 기업이 아니라 빠르게 따라잡아서 이기는 기업이다. 또 직원들은 헌신적이고 규율에 순종적이며, 따라서 실행에 효율적이다. 빛나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효율적 실행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삼성전자 또는 한국 경제를 여기까지 성장시켜온 힘이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창조적 감성은 디자이너의 야근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롭고 여유있는 문화가 그 직장과 사회에 체화됐을 때 나온다. 효율과 실행 중심 조직문화와 상충된다. 그런 점에서 애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창조적 선도자(first mover)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이 기업은 새로운 제품 영역을 개척해낸다.

그러나 애플도 꼭 여기까지다. 이번 특허소송에서 애플은 지식재산권을 지나치게 절대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내면서 생산라인 노동자들에게는 제대로 배분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던 차였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사회에 널리 보급하기보다는 이를 독점해 이익을 늘리는 데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미국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삼성과 애플은 각각 선진국과 신흥국에서 현재의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이들의 부족함으로부터 우리는 미래 자본주의의 방향을 읽는다.

그 방향은 창조, 공유, 사회적 책임이라는 열쇳말로 모아진다. 우선 창조적 감성이 필요하다. 모방으로는 시대를 이끌 수 없다. 독점과 배제는 미래의 방식이 아니며, 공유경제를 이해해야 리더가 될 수 있다. 이익만 극대화하느라 환경, 인권, 지배구조 등 다른 가치를 등한시하면 이익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주주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사회책임경영은 자선이 아니라 미래 경영의 핵심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삼성과 애플을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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