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평론가
택시 안엔 정치 얘기에 대한 유혹이 있다. 정치 얘기라는 게 실제 한국 정치를 닮지 않을 수 없어서 해놓고 후회할 때가 많지만, 택시 안 라디오에서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이 나오면 입이 근질거리곤 한다. 게다가 선거의 계절이다.
숱한 경험으로 안다. 택시에서 정치 얘기를 하면 싸우기 다반사라는 걸. 합승이 잦던 시절엔 승객들끼리 의견이 다르면 토론은 물건너가고 바로 기 싸움이 시작됐다. 대체로 나이 많은 사람, 목소리 큰 사람, 말 빠른 사람, 먼저 내리는 사람 순서로 기 싸움의 승자가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겨봤자 무슨 소용인가.
한때 우리 사회의 정치적 입장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줄었다. 쟁점이 구체화되면, 당장 대선이 주제가 되면, 스펙트럼의 띠는 십중팔구 두개로 준다. 뻔한 이분법이 택시 안에서 오갈 때, 남에게 설득당할 준비가 돼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니, 남을 설득할 정성이 있는 이는 또 몇이나 될까. 정치 얘기의 묘한 특성 중 하나가 화풀이,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애용된다는 것 아닌가. 실제로 풀어주는지, 더 쌓는지 모르겠지만.
택시에서 정치 얘기 하지 말자, 하더라도 흥분하지 말고 그냥 듣자, 그런 생각을 한 지도 오래됐다. 그래도 정말 납득하기 힘든 주장을 접하면 흥분할 때가 있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 아닐까. 내가 지켜온, 지키려고 하는, 그나마 이 공동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그런 가치에 대한 모독 아닌가…. 그래서 다퉈본 적이 있다. 승패와 관계없이 결과는 항상 마찬가지였다. 결국 내 치기를 발산한 것에 불과했다는 후회!
물론 나와 입장이 같은 택시기사를 만나 싫은 정치인 실컷 욕한 적도 있고, 입장은 다르지만 서로 최소한의 공감대를 찾으려 애쓰던 기억도 있다. 하긴, 동시대인과 정치 얘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사회 아닌가.
오랜만에 최근에 한판 했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내가 흥분해 있었던 모양이다. 치사하고 졸렬한 네거티브 전략, 아예 내놓고 객관성을 버려버린 언론, 마침 택시 안 라디오에서 그 문제를 다루는 시사프로가 나왔다. 정치인 한명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화가 나서 갑자기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누가 대통령 되면 좋겠어요?”
내 목소리는 공손했지만, 무례한 질문이었다. 낯선 이에게 이런 질문 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일이 된다. 그게 우리 정치의 콘텍스트이다. 그 기사도 내 무례를 느꼈을 거다. 대뜸 내가 싫어하는 후보 이름을 대며 ‘당연히 아무개가 돼야죠’라고 말했다. 그 단호함엔, 내 난데없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에 대한 공격성이 담겨 있었다.
“왜요?” “어쩌고저쩌고” “그럼 어쩌고 해도 된다는 건가요?” “그럼 저쩌고 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고요?” “&^%*$…” “$§&^*$%….”
익숙한, 너무나 익숙한 동문서답! 열을 올리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아닌데.” 택시에서 내리기 전에 서로 자기 말이 지나쳤다며 사과를 몇번씩 했다. 누가 먼저 사과했는지, 아마도 그였던 것 같다. 나보다 열살쯤 많아 보였다. 정치적 고집이 얼마나 센지는 몰라도 예의가 무척 바른 사람인 건 틀림없었다.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 서로 예의를 지키고,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투표하고, 고집은 꺾지 않았더라도 서로들 한번쯤은 역지사지하지 않았을까. 더 이상 뭘 바랄까. 그러니 그 투표마저 못하게 했던 그 세상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이건 마지노선이다. 뭐? 그런 얘기도 하지 말라고? 그것도 치기 어린 공격성 발언이라고? 그 말이 특정 후보에 대한 호불호와 관련이 있다고? 민주주의의 에이비시에 대한 말인데도?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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