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한 여성 탈북자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에어쇼 참관 문제와 관련해 큰 아픔을 경험했다. 남한에 정착한 지 10년이 된 탈북자 동명숙(36)씨는 지난 9월1일 서울 성남공항에서 열린 에어쇼에 참관 신청을 했다가 참석을 거부당하고, 끝내 이 일이 계기가 돼 이혼에까지 이르는 고통을 당했다. 동씨 사건은 이 땅에서 탈북자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가감없이 보여준다.
동명숙씨는 지난 17일 남한 사회에서 가꾸어온 가장 소중한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합의이혼 서류를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남한에 정착한 뒤 남한 출신 남편과 만나 5살 난 아들 하나를 두고 꿈을 키워오던 가정은 이제 정말 꿈처럼 사라지게 됐다.
지난 16일 시어머니가 혼절하신 것이 결정적 이유다. 그날 지방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는 “간첩하고 살 수 없다”며 제발 자기 아들을 놓아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간첩이라니?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동씨는 정말 지난 10년 동안 한눈 한번 팔지 않았다. 남한 사회를 알려면 좀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 2009년부터 동국대 북한학과에 진학해 학업을 시작할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그렇지 않다”고 시어머니를 설득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혼절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남편과 이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5살밖에 안 된 아들이 경험할 아픔들이 눈에 밟혀왔다.
문제의 발단은 에어쇼 참관 문제였다. 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이 행사에 동씨는 어린 아들과 함께 참관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공군본부 관계자는 동씨에게 참석 불가를 통보하며 “왜 청와대 경호처에서 5500여명에 이르는 신청자 중 유독 당신을 콕 집어 불허한다고 했는지 우리로서도 이해할 수 없다”며 오히려 의아해했다. 동씨 문제는 ‘탈북자 차별’이라는 주제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더욱이 한 온라인 게시판에 탈북자라고 밝힌 인물이 “자신은 아무 문제 없이 에어쇼를 관람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동씨 문제는 ‘진보적 탈북자 문제’로 전환되기도 했다. 동씨는 한겨레평화연구소가 지난 8월13일 주최한 세미나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탈북자도 진보적 사상을 가지고 진보적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생각을 보수적인 틀에 가두려는 것이야말로 남한 사회의 탈북자들에 대한 폭력이고 인권침해라는 주장이다. 이런 동씨가 에어쇼 관람 불가 통보를 받자 정부가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탈북자를 특별히 ‘관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터져나왔다.
시어머니의 ‘간첩’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너무 억울했지만, 이혼 이외의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사실 ‘위장 귀순한 간첩’이라는 혐의는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가 보수적인 시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들씌워지는 올가미로 악용될 때도 많다. 평소 탈북자에 대한 이런 반인권적 상황을 비판해온 그 자신이 바로 그 프레임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청와대 경호처는 동씨가 참관을 못한 것은 공군본부 쪽의 단순 실수 탓이라고 주장한다. 경호처가 “동명숙씨가 누구의 초청으로 온 것이냐”고 물어본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오히려 탈북자도 이런 행사에 참여한다는 긍정적 홍보를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군본부가 그만 동씨 명단을 불허자 명단과 잘못 섞어버려 혼란을 빚었다는 것이다.
설사 청와대의 해명을 믿는다 해도 동씨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누가 나서서 동명숙씨의 가정과 어린 아들의 행복을 다시 찾아줄 수 있을 것인가. 쌀쌀해지는 가을에 더욱 차가운 질문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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