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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대선 후보님들, ‘말괄량이 삐삐’ 기억하시나요? / 이창곤

등록 2012-10-03 19:25수정 2013-05-16 16:29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근 35년 만인가?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양 갈래로 땋은 빨간 머리, 주근깨 얼굴, 긴 양말에 커다란 구두, 두 팔로 제 몸보다 큰 말을 번쩍 들어올리던 억센 힘. 엄마 아빠 없이 홀로 지내도 늘 명랑하고 씩씩한 모습마저 똑같았다. 스웨덴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탄생시킨 9살 소녀가장, 삐삐 롱스타킹이다. 그의 좌충우돌 행태는 아이·어른 할 것 없이 각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관객을 깔깔대도록 했다. 얼마 전 스웨덴 방문 때 들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의 노천극장에서 접한 연극 <삐삐 롱스타킹>은 중년의 이방인을 순식간에 환상의 추억 속으로 밀어넣었다. 우리에겐 70년대 말~80년대 초 <한국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 ‘말괄량이 삐삐’로 널리 알려졌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는 작가의 고향, 스웨덴 남쪽도시 빔메르뷔에 조성된 테마파크다. 1981년에 세워진 그곳의 야외무대들엔 삐삐 공연 관람을 위해 스웨덴은 물론 독일, 핀란드 등 유럽 각지에서 온 아이들과, 어린 시절 삐삐를 읽거나 보면서 꿈을 키웠던 그 아이들의 부모들로 가득 찬다. 한해 50여만명이 찾는데, 30%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소설 속 장면들을 체험할 수 있는 각종 무대와 시설이 꾸며져 있으며, 공원 곳곳에서 다채로운 연극 공연이 벌어진다. 기실 이곳은 복지국가 스웨덴의 아동복지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모든 시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춰져 있다. 화장실의 세면기와 변기는 모두 9살 삐삐 또래 아이의 키 높이에 맞춰져 있다. 자연친화적 조성 또한 주목할 점이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 놀이공원치곤 없는 게 많다. 롤러코스터, 바이킹 등 전기를 쓰는 놀이시설이 일절 없다. 컴퓨터 게임기나 게임장도 없다. 피자나 햄버거 등 가공식품 또한 없다. 유명 음료 자동판매기가 있긴 해도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 수 없도록 돼 있다. 자판기를 나무판으로 덧씌워 제품 광고나 상표를 볼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공원을 운영하는 린드그렌 일가의 공익경영, 가치경영 방침에 따른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정신과 공익우선의 가치에 따른 것이라고 공원 쪽에선 설명했다.

린드그렌 월드의 이런 정신은 스웨덴 아동복지 사상 및 시스템과 일맥상통한다. 이 나라는 1966년 세계 최초로 아동학대를 금지했다. 나아가 모든 아동은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아동보호권을 담은 법률을 제정해 197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만 18살까지 사회가 아동을 철저히 책임지도록 준수함을 하나의 문화이자 규범으로 시민 누구나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란 게 복지국가 스웨덴의 구호였다.

한 사회의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의 삶과 모습이다. 우리 아이들의 삶은 어떠한가? 방치된 채 살해된 배 곯는 아이 통영 초등생, 학교폭력 등으로 끝내 죽음을 선택한 숱한 청소년들, 이런 극단적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빈곤 등 여러 이유로 6만여명의 초중고생이 학교를 중단하고, 상당수는 거리를 헤매고 있다. 한국 아동청소년의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다.

2012년 대선 정국,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복지를 말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획기적 처방을 제시한 이는 없다.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의 목소리가 있건만 이에 적극 호응한 이도 아직 없다. 수사적인 허깨비 공약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똑부러진 아동인권 보장책 하나만이라도 내어 확실히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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