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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진심’의 진심 / 이라영

등록 2012-10-10 19:22

이라영 집필노동자
이라영 집필노동자
안철수 후보는 선거캠프의 이름을 ‘진심캠프’라고 지을 정도로 ‘진심의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진심이라고 하며, 리더십의 바탕도 진심이라고 한다. 지난 7일 정책 비전을 발표할 때도 “공약과 정책은 진심일 때, 삶을 변화시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진심으로 따지자면 아버지 그늘에 갇힌 자신의 역사인식을 감추지 않는 박근혜 후보야말로 참으로 진심이 가득한 인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진심은 또 어떠한가. 그도 진심을 다해 ‘삽질’을 했다. 지리산을 보고 “개발이 덜 되었어”라며 안타까워하던 그의 잊지 못할 감수성을 떠올려 보면 방방곡곡 ‘삽질’이야말로 그의 진심에 충실한 정책이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심은 애초부터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통해 자국의 사법주권을 내주는 것이었을까. 아니다. 그도 진심으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 진심이 아니라 기본적인 가치관, 곧 정치적 이념과 그에 따른 현실적 정책 수립의 문제다. 하지만 그간의 발언을 볼 때 ‘정치적 이념’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상식파’ 안철수 후보는 애매모호한 좋은 언어를 내세워 착하고 원칙적인 말만 한다.

심지어 자신이 범야권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엔시엔디”(NCND·긍정도 부정도 않는다)라고 답하는 이 은밀한 후보의 진심을 유권자들은 대체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아마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통해서 복지, 정의, 평화의 시대적 과제를 추구”하려는 ‘상식’에 따른 행동일 것이다. 그는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스웨덴과 독일의 좌우 ‘통합’이 복지국가를 만들었다며 이념의 경계를 허문 “타협을 통한 개혁”을 여러번 강조했다.

하지만 화합이나 타협을 강조하는 안 후보는 일의 순서를 착각하고 있다. 사민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이 19세기 말부터 존재했던 유럽에서는 이미 인터내셔널 조직 등으로 국가 간에 노동자와 사회주의자 연대 경험이 있고, 격한 투쟁의 실패와 성공을 오가며 좌파가 나름의 정치적 세력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안 후보가 정치적 역할 모델이라고 밝힌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상대적 빈곤층에 속하는 남부의 백인들과 정치적 연대를 구축한 뉴딜동맹을 통해 기득권을 제압하며 정책을 펴나갔다.

화합이나 타협도 이처럼 서로가 견제 세력이 되어 협상을 할 만한 힘이 있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분단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심히 우경화되어 있으며 대통령 후보의 입에서 ‘반세계화’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아예 꿈같은 일이다. 좌파가 제대로 들어설 자리조차 없이 우파와 중도우파의 양당제로 굳건한 한국에서 타협을 통한 개혁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바꿔야 할 정치는 내용 없이 이권쟁탈만 하는 이념 부재의 정치다. 그런데 나쁜 경험이 없고 빚진 것도 없다는 청정인 안철수 후보는 이념 부정의 태도로 ‘상식’이나 ‘진심’과 같은 언어를 동원하여 정치 체제를 바꾸겠다고 한다. 정치와 거리 두는 정치인의 모습, 낯설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도 “여의도 정치는 모른다”는 걸 자신의 장점이며 특징인양 내세웠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존 정치는 모른다는 점을 마치 ‘나쁜’ 때가 덜 묻은 것처럼 써먹는 방법은 이미 처음 보는 장면이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진심 어린 소통을 강조해도 정당 없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회와 어떻게 소통할지 지금으로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진심이나 선의는 태도이지 내용이 아니며 목적도 아니다. “맑은 영혼”이나 “선한 눈빛”에서 진심을 발견하는 건 연애로 충분하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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