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11월25일과 26일 대통령 선거 후보자 등록이 한 달 정도 남았다. 정가는 물론이고 시중의 관심은 온통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에 쏠리고 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두 사람이 단일화에 실패하고 3자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희망과 분석이 뒤섞인 관측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은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동의하면서도 서로 상대방이 양보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25년 전인 1987년에도 그랬다. 대통령 직선제는 6월항쟁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성과물이었다. 당시 집권세력은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의 분열을 부추겼지만, 상식을 가진 유권자들은 단일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12월16일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가슴이 뻥 뚫린 사람들은 술에 취해 거리를 헤맸다. 양김의 분열은 끝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치 지형을 통째로 왜곡시키는 불행의 출발이었다.
1988년 총선에서 제1야당 총수의 지위를 상실한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했다. 부산·경남에 근거지를 둔 ‘민주화의 기수’가 ‘신군부 후계자’ 노태우, ‘유신본당’ 김종필과 손잡은 것이다. 김영삼의 배신은 민주세력의 양분, 부산·경남의 보수화로 이어졌다. 영남과 보수가 손잡은 거대 민주자유당은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기득권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
3당 합당은 반대 정파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민주세력 단독집권이 불가능해진 김대중은 김종필·박태준·박철언과 손을 잡았다. 집권에 성공한 뒤에도 아예 민주세력 복원을 시도하지 않았다. 개혁 주체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카르텔의 발목잡기에 시달렸다.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로 집권한 노무현은 특유의 도발적 상상력으로 소수 정파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단일화 실패의 파장은 이처럼 엄청났다. 그래도 양김은 어쨌든 대통령을 했다. 강인한 카리스마와 탄탄한 지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안고 있는 단일화 과제는 그 역사적 무게가 양김의 경우와 맞먹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양김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카리스마는 없고 지지 기반은 허약하다. 따라서 재기의 기회는 없다. 단일화에 실패하면 대선 패배의 책임을 몽땅 뒤집어쓰고 비참하게 쫓겨날 것이다.
두 사람의 강점과 약점은 절묘하게 어긋나 있다. 문재인 후보는 경쟁력이 취약하다. 박근혜 후보와 겨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야당 지지자들에게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정치와 국정 경험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된 뒤에 정치와 국정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단일화에는 절차가 필요하다. 먼저 가치와 정책을 공유해야 한다. 공동정부를 구성할 것인지,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협상해야 한다. 경선을 하려면 배심원단과 선거인단을 모집해야 한다. 여론조사를 반영하게 되면 설문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다.
야권 지지자들은 두 사람이 대통령과 책임총리를 나누어 맡으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건 안 된다. 문재인·안철수 후보 모두 부산 출신이다. 부산 출신 대통령과 부산 출신 국무총리는 다른 지역 유권자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선거 과정에 역풍이 불 것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41대 김황식 총리까지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동향인 경우는 이승만 전 대통령(황해도 평산)과 1953년 4대 총리에 취임한 백두진 전 총리(황해도 신천) 사례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 후보-당 대표’가 좀더 현실적이다. 집권 정당을 민주당으로 할 것인지,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것인지 합의가 필요하다. 후보를 양보하는 쪽이 당 대표를 맡으려면 당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처럼 단일화는 매우 복잡한 작업이다. 후보들은 ‘안 되면 내가 양보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가져야 한다. 참모들에게는 지혜와 끈기가 필요하다. 시간이 별로 없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관련 영상] 단일화 교집합과 야권의 자살골(김뉴타 1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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