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납득 어려운 SOFA 재판권 / 김기성

등록 2012-10-23 19:32

김기성 사회2부 기자
김기성 사회2부 기자
1992년 10월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미군 병사에 의해 저질러진 ‘윤금이씨 살해사건’은 내가 취재한 첫 미군 사건이었고, 가장 끔찍한 ‘범죄의 추억’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농아원생 상습 성추행 사건(1996년 6월 오산 미 공군기지), 클럽 종업원 허아무개씨 살해·방화사건(1998년 1월 의정부시)… 여중생 효순·미선양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2002년 6월 양주시), 미군 음주 뺑소니 주민 5명 사상 사건(2003년 11월 오산시), 노부부 폭행 및 부인 강간미수 사건(2011년 2월 동두천시), 고시텔 여고생 강도·강간사건(2011년 9월 ˝) 그리고….

20년째 경기지역 사건기자로 뛰며 맞닥뜨렸던 미군 관련 사건의 목록을 늘어놔 봤다. 그 누군가에게 ‘시시한’ 사례로 보일 사건들은 생략 부호를 써서 제외했다. 범죄 목록을 훑다 보니 이젠 분노보다 무기력이 앞선다. 물론 이런 ‘체험적’ 무기력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7월5일 밤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순찰을 돌던 미군 헌병들이 주정차 단속 시비를 벌이다 민간인 3명을 제압해 수갑까지 채워 끌고 갔다. 시민과 경찰의 항의 끝에 곧바로 풀려났지만, ‘점령군’ 같은 행동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여론은 미군들이 금방 체포죄로 처벌될 것처럼 들끓었다. 그러나 3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이들의 처벌은 고사하고 ‘처분’조차 감감무소식이다.

당시 미군 수뇌부는 “사과드린다”며 재빨리 몸을 낮췄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공무중’이었다는 복선을 깔았다. 한국 쪽 조사엔 ‘지속적 협력’이란 표현을 썼지만, ‘미군의 철저한 자체조사’와 ‘(적법한) 영외순찰 문제점 재검토’라는 말도 빼놓지 않은 것이다.

미군은 개인적 흉악범죄가 아니면 어김없이 ‘공무중’임을 강조한다. 왜 이처럼 공무를 ‘방패’ 삼는 것일까? 답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SOFA) 제22조 3항 ‘형사재판관할권’ 때문이다. ‘공무중인 경우엔 미국에 1차적 재판권이 있다’고 정하고 있다. 아무리 ‘납득이 안 되는 사건’이라도 공무중이면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정경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소파는 우리가 미국에 ‘재판권 포기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런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개탄했다.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건 당시 법무부는 처음으로 미군 쪽에 재판권 포기 요청서를 보냈다. 하지만 미군은 “공무중 사고이고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며 거부했다. 이 사건은 결국 미 군사법정에서 재판이 진행됐다. 판결은 불 보듯 뻔했다. 미군 2명 모두 무죄를 받았다. 아무리 과실이라 하더라도 꽃다운 두 소녀의 목숨을 무참히 앗아간 이들이 우리 법정에 섰어도 벌금 한 푼 안 낸 채 제 나라로 훌쩍 떠날 수 있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말문이 막히는 대목이다.

‘평택 수갑사건’의 미 헌병 7명은 ‘공무 수행’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나마 인지상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국민이 마치 식민지 주민들처럼 인권침해를 당해도 침묵을 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어떻게 봐야 할까. 며칠 전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은 “경기지역 주한미군 범죄는 2010년부터 올해 8월 말 현재까지 319건으로 집계됐지만 구속 건수는 단 1건에 불과했다”며 “경찰은 미군 범죄에 대한 단호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게 어디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일까.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 속 주인공처럼 뇌까려본다. ‘아~ 납득이 안 돼요, 납득이….’

김기성 사회2부 기자 player009@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아버지 시대’ 앞에 서면 왜 박근혜는 작아지는가
‘박정희 미화’ 박물관 3번 앞당겨 조기 개관…대선 지원용?
역사박물관, 박근혜 선거 위해 헌납하는가
연금공단 이사장 “내년 보험료 인상 불가피”
수급탈락 뒤 자살한 할머니의 자녀, 고소득 아니었다
청년백수 면접양복 대여 프로젝트 “주말에만 헤쳐모여”
[화보]응답하라 MBC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