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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누가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것인가? / 이창곤

등록 2012-10-31 19:23수정 2013-05-16 16:28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죽고 또 죽고…죽었다. 너무나 깃털처럼 가벼운 생죽음들이다. 이 죽음의 행렬을 누가 멈추게 할 것인가?

화마의 현장,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김주영씨는 더는 ‘휠체어가 필요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10년 전에도 장애 여성 활동가의 죽음이 있었다. 그도 김씨처럼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1급 장애인이었다. 그렇지만 가난과 장애, 여성의 3중고에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장애인 인권 보장을 위해 힘쓴 투사였다. 어느 날 느닷없이 생을 마감해 ‘시대를 울린’ 점에서도 똑같았다.

다른 점은 그는 스스로 서른여섯의 삶을 끝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최옥란씨다.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였던 최씨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턱없이 적은 생계비로는 살 수가 없었다. 하여 생계급여를 올려달라고 외롭게 호소하다 어느 날 다량의 액체를 마셔버렸다. 2002년 바람 찬 봄날이었다. 그 뒤 그의 이름 앞에 열사란 칭호가 붙었지만 10년 전 최씨의 호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뿐이다. 기실 ‘김주영’은 또다른 이름의 ‘최옥란’이었다.

최씨의 죽음은 기자의 가슴에 짙은 화인으로 남아 있다. 당시 기자는 신문사에서 사건기자들을 지휘하던 ‘캡’(기동취재팀장)이었다. 기자들의 보고에는 신음하듯 토해내는 최씨의 낮은 목소리가 있었을 터. 하지만 제대로 듣지도, 귀기울이지도 못했다. 아마도 수많은 일상적 악다구니의 하나로 치부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불합리하게 책정된 생계비에 대해 위헌신청을 낼 때, 그가 명동성당에서 홀로 천막농성을 벌일 때, 조금만,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그래서 그의 절규가 세상에 전해져 차가운 관료주의와 반인권적 제도의 구각을 허물 수 있었다면,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지는 않지 않았을까? 당시 그의 죽음을 접한 기자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최씨의 죽음 이후 10년하고도 7개월이 흘렀다. 그 세월의 사이에는 또다른 생죽음들이 여전히 우리 앞에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인공호흡기가 빠져버려 손 하나 까딱 못해 숨지고, 추운 겨울에 수도관이 파열돼도 도움 줄 이가 없어 얼어 죽기도 했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생목숨을 잃거나 내던지는 이들이 어디 이들 중증장애인들뿐이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지상에는 생목숨을 버린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김주영씨의 노제에 참석한 한 정치인은 김씨의 죽음을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그를 죽인 건 우리 모두라고도 했다. 그의 추도사는 갸륵했으나, 조문객들에게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어처구니없는 생죽음의 행렬을 끝내는 일이다.

대선 정국, 후보마다 새 세상을 열 것처럼, 모든 사회적 문제와 삶의 불안을 해소해줄 것처럼 공약하는 요즈음, 과연 어떤 후보와 정치가 이 질긴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어떤 후보와 정당, 어떤 정치가 맨땅에서 낮게 울부짖는 이 시대의 저음에 귀기울이고 있을까? 권력은 결코 스스로 귀를 내주지 않는다. 낮은 곳에 선 이들의 힘찬 연대가 권력을 두렵게 할 때, 그래서 이 시대의 낮은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는 권력을 잡을 수도 유지할 수도 없도록 할 때, 권력은 마지못해 귀를 여는 법이다.

김주영씨의 노제에는 ‘더는 죽이지 말라’는 만장이 바람에 항거하듯 나부꼈고, 긴 행렬의 휠체어는 광장을 지나 보건복지부 청사를 향해 거칠게 행진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goni@hani.co.kr

[관련 영상] ‘불길속 참변’ 고 김주영씨 마지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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