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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단일화 대신 결선투표를 / 이라영

등록 2012-10-31 19:28

이라영 집필노동자
이라영 집필노동자
한 정치컨설턴트는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무조건 한나라당(보수정당·지금의 새누리당)만 찍는 사람이 38% 정도고, 그들을 단 한 번도 안 찍었고 앞으로도 안 찍을 사람이 35%쯤 된다. 선거는 나머지 27%가 어디로 쏠리느냐로 결정난다”고 했다. 어디로 쏠릴지 모르는 그 27%의 성격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선거 전략상 ‘비한나라 계열’이 그들을 포섭하지 못하면 결국 필패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단일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이 된다. 현재도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40%대를 무너뜨리기 쉽지 않으니 정권교체를 우선시하는 입장에서는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단일화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이렇게 단일화 논의에 함몰된 나머지 선거에 출마한 후보 간에 마땅히 필요한 검증 공세조차 불편하게 보고 있다. 상대방의 표를 잃지 않고 가져와야 하기에 날 선 비판은 단일화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태도가 유권자의 눈을 더욱 가리고 정략만 있지 정책은 없는 선거를 만든다. 선거 때만 되면 정당들의 위장결혼이 판을 친다. 유권자도 알면서 속아준다.

지금까지 한국의 선거에서 ‘한나라계 정당’을 막기 위해 꾸준히 진행되어 왔던 이러한 단일화는 결국 상대적으로 힘없는 후보가 양보하는 것을 훈훈한 미덕으로 삼아 왔다. 반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 지금도 ‘감동이 있는 단일화’를 독려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왜 유권자가 서로 노선이 다른 정치인들의 단일화에 감동해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오히려 단순다수제의 문제를 냉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거듭되는 단일화를 통해 소수정당이 뿌리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일화가 실패할 경우 국민의 반 이상이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 이제는 제발 이런 불합리하고 소모적인 제도를 바꾸자. 당장 이번 선거에서는 물론 불가능하다. 그러나 단일화를 고민하는 야권 후보들은(어쩌면 심상정 후보까지 세 명) ‘결선투표제 입법화’를 단일화의 의제로 가져가면 어떨까 한다.

5월에 있었던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 전선의 후보였던 장뤼크 멜랑숑이 “첫 번째 투표에서는 고르고, 결선에서는 제거한다”는 인상적인 말을 했다.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유권자가 ‘사표’를 걱정하지 않고 자기 소신껏 지지하는 후보를 고를 수 있다. 사표의 개념이 사라지면 적어도 투표를 하지 못하는 유권자가 아니라 ‘하지 않는’ 유권자를 줄이며 투표참여율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소수정당의 후보도 자신들의 정책으로 선거를 완주할 수 있다. 굳이 어울리지도 않는 정치인들의 단일화가 필요 없어진다.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를 위해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며 정치 혐오를 부추겨 오히려 정치와 국민을 더욱 분리시킬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국민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현명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제도로는 소수정당이란 ‘표 깎아먹는’ 천덕꾸러기밖에 안 된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문제는 국회의원의 수가 아니라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양당 구도다. 다양한 소수정당이 국민 앞에 목소리 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낡은 정치를 버리겠다는 논의가 부쩍 오가지만 지속되는 단일화 논의야말로 구태정치가 아닌가. 현재 결선투표제를 공약으로 밝힌 후보도 있으니, 진심으로 정치쇄신을 하겠다면 새누리당에서 결코 환영하지 않을 이 결선투표제를 범야권 단일화의 조건으로 삼자.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도입할 수 있다. 선거제도 하나만 바꿔도 많은 것이 바뀐다. 국민이 알아서 고르고, 알아서 제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 지겨운 단일화 논의에 안녕을 고하기 위해.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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