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김선 감독의 독립영화 <자가당착: 시대정치와 현실참여>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걸 두고 많은 영화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제한상영가’는 사실상 대부분의 극장에 영화를 걸 수 없다는 뜻으로, 작품에 대한 실질적인 사형선고다. 2011년 6월 영등위는 “대사 및 주제에 있어 특별계층에 대한 경멸적 또는 모욕적 표현을 사용하고 개인의 존엄을 해치는 내용의 표현수위가 극심하다”는 이유를 들어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겼다.
<자가당착>은 꽤 난해하고 실험적인 영화다. 영화 내내 사람은 별로 등장하지 않고 경찰청 마스코트 ‘포돌이’를 본뜬 목각 인형과 쥐 인형들의 스톱모션으로 극이 진행된다. 문제는 영등위가 제한상영가 판정 이유로 적시한 구절, 즉 “특별계층에 대한 경멸적 또는 모욕적 표현”, “개인의 존엄을 해치는 내용의 표현수위가 극심”이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영화를 본 사람들과 만든 사람들 모두가 그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의견이 완벽히 일치했다. 바로 박근혜씨다.
이 영화의 특성상 문제가 될 만한 ‘사람’ 자체가 등장하지는 않는데, 후반부에 박근혜씨의 이미지가 잠깐 사용된다. 영등위는 그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이다. 사태가 흥미로워지는 건 그다음부터다. 제작자 쪽이 판정에 수긍하지 않고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문제 삼으며 “판정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게 아니냐”고 따지자 영등위는 금세 말을 바꾼다. 석 달 뒤인 9월 영등위는 재차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리면서 “과도한 신체훼손과 폭력성, 잔혹함이며 국민 정서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친다”는 이유를 댔다. 이번에는 첫 번째 판정 이유와는 전혀 다른, 폭력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여기서 “과도한 신체훼손”의 “신체”는 사람의 신체가 아니라 ‘포돌이’ 인형의 신체다.
하지만 지난 국정감사장에서 영등위 위원장은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 판정에 대해 질문을 받자 얼떨결에 사실을 실토하고 만다. “정치인을 풍자하는 건 자유지만, <자가당착>은 특정 정치인을 결혼시키고 사형시키는 등 풍자의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요컨대 제한상영가 판정이 박근혜씨에 대한 지나친 풍자 때문임을 영등위의 수장이 자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조금 더 명확해졌다. 영등위가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또는 만약 제한할 수 있다면 일관된 기준과 형평성을 가지고 적용해 왔는가?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차이는 미미하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에프티에이(FTA)는 착한 에프티에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에프티에이는 나쁜 에프티에이”라는 식의 헛소리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최근 15년을 통틀어 이명박 정권은 표현의 자유를 가장 억압한 정권이었다. 북한 매체의 주장을 풍자하는 리트위트(재전송)를 했다가 구속된 ‘박정근 리트위트’ 사건이나 G20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고 기소당한 사례 등 지난 5년간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의 일들이 태연히 벌어졌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은 그 자체로 사회를 후퇴시키는 요소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혐오스러운 건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을 강요할 뿐 아니라 거기에 어떤 원칙이나 기준도 없었다는 점이다. 영화 <자가당착>을 둘러싼 영등위의 정치적 편향과 횡설수설은 탈레반 수준의 일관성조차 없는 비루한 규율권력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게임, 뮤직비디오, 영화는 닥치는 대로 검열해 자의적 잣대로 유통을 제한하면서도, 글로벌 스타로 등극한 싸이의 ‘라이트 나우’를 유해매체에서 해제시켜주는 걸 보면서 문화 창작자들은 이렇게 자조할 수밖에 없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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