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경제부 기자
여러 산업 분야 가운데서도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은 변화가 가장 빠르다. 1990년대 이동통신혁명, 2000년대 인터넷혁명을 거쳐 지금은 모바일혁명이 한창이다. 수없이 명멸하는 수많은 벤처들도 정보통신기술 쪽이 대부분이다. 국경 너머는 어떤가. 불과 몇년 사이에 애플·구글이 세계 인터넷업계를 주름잡는 맹주가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우리나라 정보통신업계는 분위기가 좀 색다르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우면서도 늘쩡거리는 느낌이 강하다. 정보통신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종합편성채널 출범과 전임 위원장 구속, 지상파들의 분란 등 정치적 이슈로 시끄럽다. 최근엔 차기 정부조직 개편 논의에 치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업계는 어떤가. 통신업계의 ‘맏이’인 케이티(KT)는 정치권 ‘낙하산 인사’와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국제전화 사기 논란, 부동산 자산 매각, 종편 지분 몰래 투자 등으로 끊임없이 입길에 올랐다. 7월엔 가입자 87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까지 터졌다.
공교롭게도 이 ‘말 많은’ 두 조직의 수장은 공통점이 적지 않다. 1940년생으로 올해 만 72살인 이계철 위원장은 1967년 행정고시 5회에 합격해 체신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1945년생으로 만 67살인 이석채 회장은 행정고시 7회 출신으로 경제기획원에서 주로 근무했다. 나이로는 다섯살, 고시 기수로 2기 후배인 이 회장이 96년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일할 때, 이 위원장은 차관으로 그를 보좌했다. 그는 차관에서 물러난 뒤인 96~97년엔 케이티 사장을 지냈다. 업계의 또다른 거물인 이상철(64) 엘지유플러스 부회장도 케이티 수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거쳤다. 60년대 직장생활을 시작해 90년대 장차관과 케이티 사장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했던 사람들이 2010년대 업계도 좌지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평면적으로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애플과 구글의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과 래리 페이지는 60~70년대생이다.
물론 어떤 자리의 적임인지를 판단할 때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또 변화나 혁신이 꼭 나이와 반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업무나 행태가 너무 고루하다는 점이다. 이계철 위원장을 두고 통신분야 전문가라지만, 망중립성이나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논란 때 방통위의 대처를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문화방송> 사태 때 보여준 방통위의 무능함을 보면, 방송 분야 또한 기대할 게 별로 없어 보인다. 방통위를 발족시킨 명분이었던 방송통신 융합이나 모바일 혁명, 디지털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의 식견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얼마 전 디지털·스마트 관련 한 행사에서 축사를 하던 이 위원장을 지켜본 인터넷업계 종사자는 이런 말을 했다. “언제 적 분이신데, 과연 알고 하시는 말씀이겠냐….”
유능한 경제관료 출신이라는 이 회장은 어떤가. 방통위 관료들도 고개를 저을 정도다. 케이티는 지난해 이맘때쯤 망 부하 이유로 삼성스마트텔레비전 가입자들의 인터넷 접속을 무단으로 끊었다가 방통위 경고와 시청자 사과 등 난리법석을 피웠다. 이를 두고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이석채 체제의 케이티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말했다.
해킹 사건 뒤 사과 기자회견 때도 표현명 사장이 나와 고개를 숙였을 뿐, 최고경영자인 이 회장은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그러더니 며칠 뒤 런던올림픽 선수단 환영 행사에는 참석해 환히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애플이나 구글에서 이런 사고가 터졌다면, 팀 쿡이나 래리 페이지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였을지 궁금해진다.
이순혁 경제부 기자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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