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인권의 가치가 담긴 공약 / 윤지영

등록 2012-12-10 19:31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변호사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변호사
토요일 아침,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가다가 서울역에서 내렸다. 인파에 쓸려 개찰구를 빠져나갈 즈음 개찰구 옆 기둥 앞에 서 있는 역무원과 그 밑에서 김밥과 떡을 주섬주섬 챙기는 노인을 발견했다. 역사 안에서 장사를 하려다가 단속에 걸린 모양이다. 기역 자로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노인은 천천히 보따리를 쌌다. 백발의 노인은 얼핏 보기에도 80살이 넘어 보였다. 이렇게 추운 날에 저렇게 많은 김밥과 떡을 들고 노인은 어디로 갈까. 불현듯 밀린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된 상태에서 촛불을 켜고 잠들었다가 화재로 사망한 할머니와 어린 손자에 관한 기사가 생각난다. 법과 원칙은 인권의 보루인가.

제2차 세계대전의 뼈아픈 현실을 반성하며 1948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누린다는 외침이 전세계에 울려 퍼진 지 64년이 되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인권단체들은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투쟁,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 등 인권 10대 뉴스를 발표했다. 2012년 인권 현실은 참담하다. 인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인권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권리라고 이름 붙은 모든 것들이 인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권은 권리 중에서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핵심가치다. 따라서 보유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일반 권리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예컨대 노동할 권리는 인권이지만 경영권은 인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권을 제한하는 대항적 수단으로 경영권이라는 말이 너무나 쉽게 사용되고 있다. 권리는 인권이 아니지만 인권은 권리다. 인권은 권리이기 때문에 국가는 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시혜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인권을 외치는 것이 이기적인 행위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를 주장하는 장애인이나 정리해고 철폐를 외치는 노동자는 공동체의 이익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비춰진다.

인권과 법은 다르다. 법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를 통제하고 규율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과 법을 같은 말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각에서는 법을 지키는 것이 인권을 보장하는 길이며 따라서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의 인권은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권은 피부색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권리다. 다수결, 이해관계나 효율성으로 그 내용이나 양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대선 후보의 공약을 바라보자. 박근혜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한국형 복지체계의 구축’에는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복지도 없다는 시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노동 공약 역시 일자리 창출에만 방점을 둘 뿐 그 속에 노동권이나 노동3권은 들어 있지 않다. 교육 공약 역시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의 입장이 아니라 투표권을 가진 학부모의 입장에서 접근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만 있을 뿐 실천을 위한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노인, 장애인, 여성, 아동의 권리,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크게 후퇴한 자유권의 보장을 담았다는 점에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그나마 진일보한 것이지만 공약의 실효성을 담보할 장치가 미흡하다. 투표권이 없는 이주민이나 동포와 같은 소수자에 대한 공약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군소후보의 정책은 좀더 인권적이다. 특히 노동에 있어서만큼은 김소연 후보는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했고 공약도 선명하다. 인권의 가치가 대선 공약의 제1의 가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변호사

<한겨레 인기기사>

‘엠팍’에 나타난 문재인 “역전 만루홈런 기대해달라”
안철수 “다음 정부에서 임명직 안 맡겠다”
투표율 만큼 커피 쏩니다!
일본 TV “문재인 ‘반일’ 대 박근혜 ‘우호적’”
명문고 진학이 명문대 합격 보장하지 않는다
고공 농성 중 용변보다 기겁한 사연
[화보] ‘돌아온 여왕’은 더 빛났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1.

윤석열, 군·경호처도 검사처럼 무한 복종할 줄 알았나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2.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샘난다, 뉴욕의 갤러리 문화 [크리틱] 3.

샘난다, 뉴욕의 갤러리 문화 [크리틱]

대추리의 싸움…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 맞서다 4.

대추리의 싸움…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 맞서다

내란 수괴의 “자유주의자” 고백 [1월22일 뉴스뷰리핑] 5.

내란 수괴의 “자유주의자” 고백 [1월22일 뉴스뷰리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