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주 사회2부 기자
지금 충청북도 청주시내는 투표 참여 펼침막의 물결이 장관이다. 지난 12일부터 하나둘씩 등장하더니 이제는 600~700여장까지 늘어났다. 거의 10~20m 간격으로 “투표천국 기권지옥”, “투표하라 1219”, “투표는 도시락 폭탄보다 강하다”, “이민 안 가려면 투표 꼭” 등 기지 넘치는 투표 참여 호소 펼침막이 나부끼고 있다. 자고 나면 남녀노소, 기관·단체 등이 내건 각양각색의 새 펼침막이 눈에 띈다.
2000년부터 10년 넘게 충북지역 현장을 취재하고 있지만, 이런 적극적인 민심 표출을 본 적이 없다.
충청도 사람, 특히 충북 사람들이 입에 달고 있는 말 가운데 하나가 ‘글쎄유’다. 전라도의 ‘거시기’, 경상도의 ‘마~’ 못지않다. 질문을 하면 즉답을 하기보다 ‘글쎄유’ 하며 쉬었다가 말한다. 신중해 보이지만 애매모호하기도 하다. “오늘 저녁 모임에 오실 건가요?” 하고 물으면, “글쎄유, 가게 되면 갈게유” 하는 식이다. 참석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모임을 하면 늘 2~3개쯤 여벌 수저를 놓아야 한다. 다른 지역 출신인 나는 이 글쎄유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충북 사람들은 여론조사에서도 이 글쎄유 기질 때문에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여론조사 기관을 가장 애먹이는 지역이 충북이란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충북의 신중한 민심은 천심으로 여겨졌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는 충북의 민심을 얻은 후보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1987년 대선에서는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충북에서 46.89%를 얻어 28.23%에 그친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다.
14대 대선에서는 충청권 맹주로 여겨지던 김종필씨와 힘을 합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가 충북 민심을 얻어 당선됐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디제이피 연합을 이룬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충북에서 이겨 대통령이 됐다. 16대에서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운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충북에서 50.41%의 지지를 모아 충청권 후보를 자처하던 이회창 후보를 따돌리고 대권을 잡았다. 17대 이명박 대통령도 충북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20% 가까이 누르고 승리했다. 충북을 얻은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등식이 성립됐다고들 한다.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은 2~7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5대만 빼고 충북에서 승리한 이가 대권을 차지했다. 5대 때는 민정당 윤보선 후보가 충북에서 48.92%를 얻어 39.78%에 그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를 눌렀지만 전국 득표에서는 1.55% 차로 박 후보에게 패했다.
이런 까닭일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대통령 후보 등록 뒤 첫 방문지로 충북 청주를 택했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어머니의 고향’을 외치며 충북 민심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주까지 공표된 여론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충북 고지를 선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을 하루 앞둔 18일 충북도청 기자회견장을 잇달아 찾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서로 다른 판세 분석을 내놨다. 민주당 쪽은 “청주를 중심으로 충북에서도 막판 대역전 현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한 반면, 새누리당은 “박 후보가 충북에서 이기고 있는 만큼 대선도 박 후보가 승리한다”고 맞받았다.
‘글쎄유’라는 신중한 민심에서 ‘펼침막’이라는 적극적 민심 표출로 돌아선 충북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충북 민심=대권’이라는 등식이 이번에도 성립할지, 5대 대선처럼 충북에서 이기고도 대선에선 패하는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오윤주 사회2부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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