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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공간’의 몰락 / 노형석

등록 2013-01-08 19:23

1971년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은행 빚으로 경매에 나온 서울 계동 집에 건축사무소를 지었다. 한국 현대 건축의 명작으로 회자되는 공간 사옥의 탄생이었다. 경매중인 땅에 건물을 짓다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비아냥이 적지 않았다. 훗날 김수근은 술회했다. “그래도 지었다. 돈이란 빚질 수 있지만, 시간이란 빚을 얻을 수도, 갚을 수도 없다는 생각으로 마구 지었다.”

김수근이 ‘선물’이라 표현했던 공간 사옥은 그가 고민해온 ‘한국적 건축’의 실체였다. 화염처럼 뻗어간 담쟁이로 뒤덮힌 벽돌 외벽, 대청마루 같은 현관과 미로처럼 이곳저곳 연결되면서 돌출하는 커피숍, 설계실, 공간사랑…. 층 구분이 모호한 내부의 낮은 천장 아래 이어지는 열린 공간들의 끊임없는 유동과 긴장은 김수근이 성찰한 전통 골목길 미학의 낯선 재현이었다. 이런 고민이 배어든 이 미로 건물의 설계실에서 승효상, 김원 같은 명건축가들이 나왔고, 지하 한쪽 공간사랑에서는 1970년대 후반 소극장 운동이 태동했다.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공옥진 병신춤 등도 여기서 나온 명작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공간 사옥에서 46년째 발행중인 국내 최장기 문화전문지 <공간>도 기억한다. 1966년 권력자 김종필의 격려금을 밑천으로 하룻밤 새 김수근이 구상했다는 <공간>은 70년대 국내 유일한 문화예술 전문지였고, 지난 연말까지 통권 541호를 냈다.

공간 사옥이 최근 공간건축사사무소의 부도와 법정관리 신청으로 매각될지도 모를 처지에 놓였다. 금융위기 뒤 경영난이 근본 원인이나, 정관계 인허가 비리로 얼룩진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 사업 설계비 100억여원을 떼인 게 결정타였다고 한다. 경영 부실은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공간 사옥과 <공간>지는 공공의 힘으로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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