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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박근혜 경시 / 이철희

등록 2013-01-14 19:27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결국엔 편을 갈라 서로 낫다고 다투는 것이 정치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이긴 사람이 다 먹는 승자독식의 체제에선 자칫 상대를 부정하는 정치나 선거가 되기 쉽다. 그런데 어떤 정치학자가 민주주의는 마음의 상태라고 했다. 편을 갈라 싸우되 차이와 우열이 있을 뿐 옳고 그름의 ‘선악 프레임’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선악의 관점으로는 결국 상대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을 끝으로 진보 또는 민주 진영이 털어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상대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마음의 병’이다. 독재자의 딸에게 어떻게 21세기의 이 나라를 맡길 수 있느냐는 태도가 좋은 예다. 이런 자세로는 좋은 정치, 이기는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민주당은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가진 해법보다 왜 자신들의 그것이 더 나은지를 쉽고 간명하게 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박 후보를 지지하는 건 마치 비윤리적 선택인 양 몰아갔다.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태도다.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결과를 수용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네다바이’를 당했다고 분하고 억울해했다. 자잘한 꼬투리를 빌미로 삼아 노무현 대통령을 힘으로 몰아내는 탄핵에 나섰다. 상대를 부정하는 마음의 상태가 빚어낸 비극이다. 이 탄핵으로 당시 한나라당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한테 사상 처음으로 의회권력을 내놓는 패배를 당했다.

미국의 사례도 있다. 1992년 공화당의 현직 대통령이 무명의 야당 후보에게 졌다. 그들은 로스 페로라는 제3후보 때문에 부당하게 진 걸로 여겼다. 뺀질이 클린턴을 도저히 대통령으로 인정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클린턴의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했고, 마침내 1994년 중간선거에서 이기자 공화당은 내각제의 다수당처럼 사실상 국정을 주도했다. 2년 뒤 그들은 떼놓은 당상이라던 1996년 대선에서 허무하게 패배했다.

대선 후 근 한 달, 아직도 진보진영이나 야권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을 폄훼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열 중 아홉이 투표장에 나온 50대를 비난하고, 심지어 부정선거 의혹까지 제기한다. 윤창중 대변인, 이동흡 헌법재판소 소장 지명자를 가장 ‘박근혜다운’ 인사라고 생각한다. 당선 후 친박의 준동을 막고, 인수위를 슬림하게 구성하고, 중소기업 중시를 천명하고, 야당의 정책까지 포용하겠다는 공언을 해도 일시적인 위장으로 생각한다.

3차 텔레비전 토론이 끝나고 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 토론이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대로 내린 반쪽 평가일 뿐이다. 이정희 후보가 2차 텔레비전 토론에서 최저임금 문답을 주고받을 때 박 후보를 조롱하는 언사를 보인 것도 사실 진보진영에 만연한 심리의 반영이었다. 내가 잘못하면 실수고, 남이 하면 실상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태도가 빚어낸 폐해다.

민주주의에서는 상대를 대등하게 존중해야 한다. 물론 상대를 존중해야 하는 원리는 선거에서 이긴 사람들이 더 명심해야 한다. 선거 승리를 마치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임(mandate)으로 생각하면 잘못이다. 로버트 달이 말했듯이, 선거는 위임하는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야당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갖는 게 의당 더 급선무다. 야권도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박 당선인에 대한 심리적 경시나 정신적 폄훼의 자세를 벗어던져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르는 그 후보에게 국민들이 왜 1577만3128표를 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게 전제돼야 패인 분석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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