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사회2부 기자
쌍용자동차가 지난 10일 노조와의 합의서에서 3년5개월 만에 무급휴직자 455명을 3월에 복직시킨다고 발표했다. 당장 국정조사를 피하기 위해 무급휴직자를 일시적으로 복귀시키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오랫동안 직장을 잃고 아르바이트 등으로 연명하던 무급휴직자들로서는 낭보임이 틀림없다.
넉달여 앞선 지난해 9월 한진중공업 임직원들한테도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노사가 4년 만에 임금·단체교섭을 타결한 것이다. 앞서 노사가 2011년 11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309일에 걸친 고공 크레인 농성 등에 힘입어 정리해고자 90여명의 재취업 등에 합의했을 때 빠졌던 임금과 복지 등의 문제가 10개월 뒤에 한꺼번에 합의됐기 때문에 한진중공업 임직원들의 기쁨은 남달랐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동결된 기본급을 단번에 15%나 인상한 것은 놀랍다. 3~4년 동안 선박을 수주하지 못해 2011년 2월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회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어서 정말 회사 경영이 어려운 것이 맞나라는 의구심마저 일었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의 노사 합의는 정리해고를 두고 노동계와 재계가 오랫동안 날카롭게 맞서다가 타결했다는 점도 닮았지만 합의서에 서명한 노조가 정리해고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전국금속노조에서 탈퇴한 조합원들이 새로 설립한 실리 중심의 기업별 노조라는 점도 닮았다.
실제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를 반대한 전국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2011년 11월 정리해고 문제 등에 대해 회사와 합의를 한 뒤 임금·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 쪽은 임금 동결 등을 요구하며 협상을 끌다가 한진중공업지회를 탈퇴한 조합원들이 지난해 1월 만든 새노조로 교섭권이 넘어가자 같은 해 9월 교섭 시작 20여일 만에 기본급 15% 인상이라는 선물을 새노조에 안겼다.
쌍용자동차 회사 쪽도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2009년 70여일 동안 평택공장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던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서 탈퇴한 조합원들이 2009년 9월 만든 기업별 노조와 지난 10일 무급휴직자 복직에 합의했다. 두 회사 경영진의 교섭 방식은 마치 약속을 한 것처럼 닮은꼴이다.
전국금속노조에서 탈퇴한 노조에 힘을 실어준 두 회사 경영진의 전략은 일단 성공한 듯 보인다. 한진중공업 새노조 조합원들은 최강서씨가 지난달 21일 “민주노조로 돌아오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새노조를 떠나지 않고 있다. 조합원 3000여명의 쌍용자동차 기업별 노조도 3월에 무급휴직자들이 공장으로 돌아오면 대표 노조로서 지위를 더 굳건히 하게 된다. 반면에 동료의 일터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던 200여명의 해고자가 주축이 된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처지에 놓였다.
교섭권이 ‘강경한’ 노조에서 ‘온건한’ 노조로 넘어간 뒤 두 회사 경영진이 생각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다시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경영이 어려워지면 노조의 저항이 약화될 것을 기대하고 일사천리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근로조건을 개악시키려 할 것이다.
만약 두 회사 경영진이 ‘내 입맛에 맞는’ 노조만을 파트너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다면 오산이다. 기업은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두 수레바퀴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두 회사 경영진이 민주노조의 싹을 자르고 다루기 쉬운 노조와의 밀월관계만 고집한다면 더 큰 노사 갈등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5일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부산으로 달려온 2500여명 앞에서 “유신과 군사독재 때도 싸웠다. 그게 역사입니다”라고 외쳤던 것은 그 시작일지 모른다.
김광수 사회2부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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