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지주회사가 재벌을 닮아가고 있다. 재계에 5대 재벌이 있다면 금융계에는 5대 금융지주회사가 있다. 재계에 총수가 있다면 금융계에는 천황이 있다. 금융지주회사는 1980년대 후반 재벌이 관료의 손을 벗어나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던 바로 그 길을 30년이 지난 지금 정확히 쫓아가고 있다.
천황으로 불리는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개인적 비리와 정경유착은 이미 재벌총수의 행동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아 있다. 최근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신한금융지주의 라응찬 회장 비리가 좋은 예다. 수많은 차명계좌를 이용한 방대한 자금세탁, 이상득 전 의원에게 건네진 정치자금 의혹,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2세로의 증여 등 제목만 보면 우리가 늘 몇몇 재벌총수에게서 단골메뉴로 보던 범죄 혐의가 망라되어 있다. 검찰이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진실을 은폐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조차 똑같다.
금융지주회사의 문제는 단지 지배자의 개인적 비리에 멈추지 않는다. 재벌체제에서 총수는 쥐꼬리만한 지분을 가지고 기업집단 전체를 좌지우지한다. 이 경우 총수의 이해와 회사의 이해는 제대로 일치하지 않고, 따라서 회사는 자칫 총수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금융지주회사에서도 그대로 발생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회사를 보자.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인 하나은행은 하나고등학교라는 은행법상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에게 은행법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자금을 무상 지원했다.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지주에 편입된 뒤에는 외환은행 이사회까지 자금지원을 결의했다.
물론 이 자금지원은 언필칭 ‘공익사업’이라는 탈을 쓰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하나금융지주의 전 회장이 하나고 이사장을 맡고 있다는 점, 사전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외환은행까지 끌어들인 점 등을 고려하면 ‘지배자의 사금고화’ 정황이 짙어진다. 공익재단을 만들어 개인적 이득을 얻거나, 특정 회사에 대한 지배도구로 활용하는 재벌의 친숙한 꼼수는 바로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된다.
혹자는 감독기관이 감독을 제대로 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권력으로 성장한 금융지주회사에 대해 감독당국은 서서히 통제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정권의 핵심이 직접 임명하거나 적어도 정권의 핵심과 정치적으로 직거래를 하고 있다. 따라서 ‘당 서열이 뒤져도 한참 뒤지는’ 일개 감독기구의 장이 무슨 힘을 쓸 수 있겠는가. 론스타의 탈출 과정은 둘 중 누가 상관인지를 정확히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감독당국이 관련 임원을 징계해도 문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은행이 잘못된 행동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사결정은 지주회사나 회장이 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견제도 쉽지 않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이사들에서 보듯이 회장님의 뜻에 대한 내부통제는 고장난 상태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이중대표소송이 도입돼 있지 않아서 지주회사의 소액주주들이 하나은행처럼 완전자회사의 임원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다.
지금은 감독당국의 말을 듣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힘의 우위는 확실히 반전될 것이다. 마치 재벌이 지금 공정거래위원회를 우습게 아는 것처럼. 이제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감독을 건전성 감독 차원에서가 아니라 일반 경제력집중 억제, 불공정거래 방지, 총수의 위법행위에 대한 엄벌 등 재벌통제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때가 되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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