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18일까지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장관 후보자, 청와대 비서진 내정자 명단을 아무리 뜯어봐도 새 정부는 ‘박근혜 정권’이지 ‘새누리당 정권’은 아닌 것 같다. 허태열 비서실장 내정자, 유정복·진영·조윤선 장관 후보자 등 정치인 출신들은 정치적 역량보다는 주로 박근혜 당선인을 보좌한 공로를 인정받아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정무수석, 국정원장 등 몇 자리를 더 지켜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새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요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나머지는 단순 보좌에 머무는 ‘대통령 유일 체제’로 짜이게 될 것 같다. 특히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관계가 걱정스럽다. 대통령은 시혜를 베풀듯 집권 여당의 의원들에게 장관직을 하사하고, 새누리당은 그 대가로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 당헌 7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동시에 8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왕적 총재의 출현을 방지하면서도 정당 책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새누리당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비치는 이유는 뭘까. 두 가지 의심이 든다.
첫째,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국회와 정당 무시 경향일 수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국회와 정당을 ‘정쟁이나 일삼는 쓰레기장’으로, 대통령인 자신은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일하는 유일한 존재로 정치적 이미지를 조작했다. 독재자로 평가받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주 심했다.
불행한 것은 국회의원 출신인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독재자 프레임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심지어 자신이 마치 정치인 출신이 아닌 것처럼 국회와 정치를 비난했다.
대통령 취임을 눈앞에 둔 박근혜 당선인도 그런 덫에 걸려들 가능성이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직접 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대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억지에 가깝다. 협상에 나선 여당 대표들에게 재량권을 거의 주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옳으니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냥 협조해 달라는 얘기다. 위험하다.
둘째, 박근혜 당선인이 자신을 새누리당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데타 뒤 정치를 시작하면서 공화당을 창당했다. 박정희는 공화당이요, 공화당은 박정희였다. 1971년 10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뜻에 반해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백남억 당의장, 김성곤 중앙위의장, 김진만 재정위원장, 길재호 정책위원장 등 공화당 ‘4인 체제’의 이른바 ‘10·2 항명 파동’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중앙정보부는 의원들을 남산 지하실로 끌고 가서 두들겨팼다.
박근혜 당선인은 2004년 총선에서 당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뒤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명과 로고를 바꾸고 경제 민주화 기치를 세웠다. 이런 혁신의 결과 패색이 짙다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승리했다. 이쯤 되면 박근혜가 새누리당이요, 새누리당이 박근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역시 위험하다.
박근혜 당선인의 정확한 생각은 뭘까? 알 수 없다. 그래도 좋은 쪽으로 믿고 싶다. 그는 국회의원을 여러 차례 지낸 정치인이다. 국회와 정당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제 민주화, 복지 공약 이행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국회와 새누리당의 전폭적인 협조가 절실하다. 어차피 관료와 교수 출신들을 대거 배치한 내각은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새누리당을 존중해야 한다. 여당을 국정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그래야 여당이 살아나고, 야당이 살아나고, 국회가 살아나고, 정치와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게 된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한겨레캐스트]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 무능’,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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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성한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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