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칼럼니스트
최근 10여년간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여러 사건들의 공통점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표현대중(expressive crowd)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표현대중은 대중매체의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대중이 아니라 정보를 가공해서 확산시키거나 스스로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는 대중을 가리킨다. 이 말을 떠올리게 된 건 일본의 정보통신(IT) 비평가 우메다 모치오의 ‘총표현사회’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였다.
총표현사회는 매체 환경이 일방통행에서 커뮤니케이션 지향으로 변하면서 정보의 수신자가 동시에 발신자가 되는 사회다. 우메다는 “인터넷을 하는 불특정 다수는 어리석은 대중”이라는 비난을 강하게 반박하면서 ‘엘리트 대 대중’이라는 복층구조가 아닌 3층 구조로 총표현사회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총인구 1억명일 때 엘리트가 1만명이라 친다면 블로그 등을 통해 표현사회에 데뷔한 인구는 500만~2000만명이라고 어림잡는다. 이들은 우중이기는커녕 10명당 1명 또는 20명당 1명꼴로 존재하는 영민하고 창조적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총표현사회의 실제 모습은 이른바 ‘뉴미디어 전도사’들이 포장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스마트하지만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표현대중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각종 사이트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에 쏟아내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 대부분이 실은 별 의미 없는 잡담, 와전된 소문, 날조된 미담이다. 사람들은 술에 취한 채 트위터에 욕을 남기거나 대면해선 결코 하지 않았을 민망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늘어놓는다. 감정을 과장하거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거의 연극성 인격 장애로 의심되는 이런 자기노출은 표현대중의 ‘보편증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게 목격된다. 소위 사회지도층, 유명인, 비유명인 모두가 평등하고 투명하게 망가진다.
총표현사회가 되면서 관심과 주목을 받기 위해, ‘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점점 더 중요해졌다. 사회학자 찰스 더버는 <주목의 추구>라는 책에서 소비자본주의와 정보사회가 개인들로 하여금 주목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갖게 했으며, 그 결과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매체 환경이 일방통행에서 커뮤니케이션 지향으로 변화했다”고 말하면 언뜻 바람직하게 들리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소통의 기준과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려운 혼란일 수 있다. 게다가 ‘소통과 숙의’라는 건 원래 ‘과시와 경쟁’에 비하면 지루하고 답답한 일이다. 총표현사회의 실제 모습은, 최소한 한국을 보자면 ‘자기전시의 동물원’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결국 ‘인터넷의 대중은 우중’이란 소리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문제는 ‘대중은 옳다/그르다’는 관념 자체다. 진리를 체현하는(혹은 체현 불가능한) 주체에 대한 이런 환상은 매우 뿌리 깊은데, 현실의 모순을 해결해줄 타자의 도래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메시아주의이며 미륵사상이다. 민주주의가 애초부터 대중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한 것이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테네의 민주정은 시민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권력을 탐하는 본성에 대한 불신에 공히 기반하고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제비뽑기라는 우연성을 도입해 국가의 관리직을 뽑았다.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도, 민주주의를 통째로 부정하는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도 모두 한국의 표현대중이 지닌 모습인 것이다.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표현대중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진영논리와 관념적 당위를 벗어난 진짜 소통도 가능하지 않을까.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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